[영화속, 그장면] 또 다른 불륜영화인가, 사랑영화인가 - 애프터 워 (The Aftermath,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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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 피어나는 갈등


 Rhidian Brook 의 소설 원작인 The Aftermath는 James Kent 감독의 작품으로 올해 개봉된 영화입니다. 1945년 전후 독일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폐허가 된 함부르크와 산산히 부서진 사람들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줄거리 - 반란군과 대립하는 영국군 대령인 남편 루이스와 부인 레이첼은 독일 건축가 루베르트의 집에 머물게 됩니다. 영화는 그 집 구석구석에 시선을 비추고, 그 시선에 따라 각 캐릭터들의 감정에 맞닿고 있어요. 넓고 큰, 하인들이 존재하는 낯선 집에 들어오게 된 레이첼은 시종일관 불편합니다. 오래 전 폭격으로 잃은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가슴에 묻은 과거로 인해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부부기에 서로 금기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채로 지냅니다.

 아직 슬픔이 가시지 않은 채로 다양한 사건들을 맞닥뜨리면서 복잡한 나날들을 보내는 와중, 루이스는 아들을 잃은 괴로움을 마주하지 않으려 계속해서 밖으로 나돌고, 그녀는 또 한번 남겨진 생활을 하죠. 루이스는 루이스 방식대로, 레이첼은 그녀만의 방식대로 슬픔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와중, 레이첼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사람을 폭격에 잃은 루베르트와 그녀는 서서히 슬픔을 공유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강한 케미로 이끌렸던 두 사람은 루이스가 집을 비운 사이 사랑을 나누고 불륜을 저지르는 상황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결국 레이첼에게 자신과 함께 떠나자고 하는 루베르토, 그리고 그와 새로운 출발을 하기로 결심한 그녀. 과연 그 둘과 루이스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초반엔 레이첼과 루베르트의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감정을 확인해가는 스릴에 빠져들게 될거라 확신합니다. 저는 보는 내내 둘 사이에 강하게 튀는 스파크에 정신을 못차렸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왜 그녀가 남편과 단절된 생활을 해야 했는지는 남편의 이야기, 즉 어째서 감정을 묵혀만 두고 밖으로 나돌며 그 괴로움을 잊으려 했는지 그 배경을 따라가다보면 얼핏 이해가 되더라고요. 불륜의 끝은 보통 놓아주거나 아니면 받아들이지 못해 서로 죽이거나 하는 극단적 결말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관람했지만 영화만의 감정라인, 배우들의 연기를 따라가다 보니 영화속 줄거리가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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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루베르트를 연기한 알렉산더 스카가르드는 캐스팅부터 화제였습니다. 집에 아내를 스카가르드와 함께 두고 나돌다니, 미친거 아냐? 라는 유명한 영화의 감상평이 있을 정도로 그는 섹시함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죠. 스카가르드를 캐스팅하게 된 배경엔 확실히 레이첼의 바람 상대로 뒤지지 않을 만한 매혹적이면서도 슬픔을 안고 있는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여야 했음이 적용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 한번 역사 드라마퀸으로 떠오른 키이라 나이틀리는 이번 영화에서도 아이를 잃은 슬픔을 간직한 한 엄마로서, 욕망을 가진 한 여인으로서 능동적인 캐릭터를 연기합니다. 물론 플롯에 따라 현 남편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클리셰한 설정에 질타를 받긴 했지만- 그만큼 그녀가 역활을 훌륭히 해냈다고 볼 수 있는 거겠죠?


 제이슨 클라크 또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그 시대의 표본적인 남성상을 연기합니다. 그녀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도 그녀에게 확인을 받은 후 결국은 그녀를 놓아주게 되는, 어떻게 보면 참 안타깝고도 바보같은 캐릭터입니다. 이러한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한데 뒤섞여있는 이 영화는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 영화 중 두번째로 꼽힐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한가지 확실한 건, 단순한 불륜영화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음악 또한 마틴 핍스 음악감독의 작품이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는 엔니오 모리꼬네 다음의 거장이라고 느껴요. 그의 음악은 현대적이면서도 동시에 클래식의 슬픔을 잘 표현한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도 대단했죠. (조만간 리뷰 써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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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영화속, 그 장면] 하나를 딱히 꼽기가 너무 어렵네요. 하지만 세가지를 추려보겠습니다.

 첫번째. 서로의 마음을 보았지만 아직 확신할 수 없는 상태로 미묘한 기운이 흐르는 집안에서 루베르트가 머무는 다락방을 비추는 씬입니다. 그는 도면을 펼쳐 일을 하던 중, 듣던 음악에서 그녀를 떠올리고, 음악을 살며시 그녀가 듣고 있는 방 쪽으로 돌려 놓습니다. 마치 음악을 통해 마음이 전달 되듯, 타고 흐르는 계단과 층을 지나 문 뒤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그녀의 모습이 비춰져요. 마치 그가 그녀를 유혹하는 장면이랄까, 하여튼 영화 내내 숨기지 않고 그녀에게 직진하는 루베르트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였습니다. 밀당과 떠보기가 난무한 현대의 연애의 좋지 않은 점만 가득한 부정적인 제 관점이 이 영화에서 힐링되는 듯 했으니까요. 동시에 루이스에게 미안했지만..


 두번째로, 아직 죽은 아이를 놓아주지 못하면서 옅어지지 않는 죄책감에 피아노 앞의 무너지는 레이첼을 담은 장면입니다. 숨길 수 없는 곳에서 끌어올려지는 아이에 대한 아픈 기억은 아이의 스웨터를 만지기만 해도 그녀를 잠식합니다. 마침내 아이와 함께 쳤던 피아노 앞에 다시 앉아서 꺼이꺼이 우는 그녀를 감싸는 루베르트의 손 또한 인상적이였어요. 그 둘의 마음이 이어지는 위치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전쟁으로 잃은 그 슬픔에서 맞닿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마지막은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았던 잃은 아이에 대한 슬픔을 토하는 루이스의 씬. 그 또한 침대 위에 놓여져 있는 아이의 스웨터를 발견하고선 아이처럼 울음을 토하며 무너지고 맙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참 안타까웠어요. 또한, 레이첼을 놓아주고 자신이 눌러왔던 슬픔을 확인하는 그의 모습에서 연민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그녀가 내린 결정을 저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종종 플롯은 알지만 감정의 흐름을 놓칠때가 많은데 한 순간도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주는 집중력 높은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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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허가 된 함부르크, 그리고 한 부부. 그들을 맞이하는 한 남자와 거대한 저택. 그 셋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강추합니다.


영화 URL: https://www.themoviedb.org/movie/433502-the-aftermath?language=en-US
별점: 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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