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사랑을 잃어보니 글이 써지지 않더라

책을 읽는 순간엔 나의 고민과 잡생각이 사라지기에 더욱 책을 놓을 수 없었고 늘 도서관과 서점을 전전긍긍하곤 했다. 책을 읽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치료였고 통로이자 구원이였다. 작가들이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풀어놓은 귀한 글들은 나에게 위로가 되었고, 용기의 밑거름이 되주었으며 기꺼이 친구가 되주었다. 어떻게 하면 그들처럼 나와 상관없는 타인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진심을 가장 잘 전달 할 수 있을까 고찰에 고찰을 거듭했다. 그 동안 책 속에서 꺼내온 영감과 자극으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생각해보면, ‘작가' 라는 꿈은 그렇게 시작된 듯 하다. 서서히 옅게 나를 물들인 활자들 덕분에 나는 뭍 위로 떠오를 수 있었고 숨을 쉴 수 있었다. 나의 글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는 상상을 하면, 나는 이상 바랄 것이 없게 된다. 누군가에게 꿈을, 희망을, 위로를, 사랑을 전해줄 수 있다면.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내 글이 누군가를 숨을 쉴 수 있게 한다면 이상 바랄것이 없겠다. 바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그런데, 만약 내가 숨을 쉴 수 없다면 어떨까. 글을 쓰는 행위가 나를 살릴 수 없다면? 진정 나의 영혼을 들여다봐주는 이들이 떠나는, 즉 사람들과의 관계가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상황이라면? 나는 글과 음악이 아닌 대체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걸까. 사람은 사람으로 산다. 진심이 통한다고 믿었던 관계, 즉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고 또 다시 책과 음악, 영화와 명상으로 도망을 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관계의 본질과 글을 쓰는 이유는 아주 밀접하게 닿아있다. 만약,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약과 상담에서 홀로서기 할 수 있을 거라 희망에 가득찼던 지난 시간은 한낱 쓸모없어진 영수증 종이와도 같아진다.

결국 모든것은 마음에 달렸다. 그 어떤것이라도 절대적일 수 없고, 마음이 가지 않은 것들은 쓸쓸히 흩어져버리는 먼지와도 같이 날아가버린다. 아무리 노력한들 내가 힘쓸 수 없는 영역이란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진리, 그 진리가 뼈 아프게 또 날 꺾는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즉 사랑으로서 치유가 된다. 나는 무엇으로 치유를 받을 것인가 하면, 무엇으로 상처를 받았나 근본적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자. 결국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뭘 그리 발버둥 쳐댔을까.

사랑에 대해 한없이 약해지는 이런 불안함이 찾아올 때면 이따금 벨 훅스의 ‘All about love’를 펴곤 한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구절은 이것이다. ‘실제로 여태까지의 위대한 사회운동들은 사랑에 사회를 바꾸는 힘이 있다는 말을 좀체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이란 순진하고 나약한 사람, 대책없이 낭만적이기만 한 사람들이나 찾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p17, All about love’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것은 사랑이다. 그 누구도 사랑을 불필요로 하지 않는다. 삶 속, 내 자신과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린 사랑을 발견하고 그 기쁨을 나눠야 한다. 그리하여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랑을 찾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요새 마음속, 건드리면 어김없이 눈물샘이 터지는 한 특정한 지점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곳을 자극하는 인풋을 접하게 되면 속한 상황에 관계 없이 언제 어디서나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추측이 부끄러울만큼 핵심을 꿰뚫는 질문과 성찰을 만났을때 또한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만, 보통은 마음 저림을 감당하지 못해 터지는 눈물이다. 대부분 책 속에서 이러한 경험을 하기도 하고, 길을 걷다 가족을 찾는 현수막을 볼때나 힘든 시간을 극복하는 이웃을 접할때 흐른다. 이런 여린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요즘, 나는 나의 부족함을 더욱 깨달아야 하겠구나 싶다. 내 안이 어떻게 비워져 있는지 파악하고 나면,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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