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yamory’ 동시에 여러명을 사랑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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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lyamory is the practice of, or desire for, intimate relationships with more than one partner. ‘Poly’는 그리스어로 ‘많은’을, ‘Amor’은 라틴어로 ‘사랑’을 뜻합니다.

    한국어로는 비독점적 다자연애(非獨占的 多者戀愛), 비혼자 집단에서 동시에 여러 명의 성애 대상을 가질 수 있는 경우를 칭합니다. 비독점적 다자연애자는 한 명만을 성애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일 뿐 일대일 연애 관계를 맺기도 하죠. 다자간 연애는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과만 결혼하는 ‘일부일처제’, ‘일처일부제’의 개념에 반(反)합니다. ‘일부다처제’ 혹은 ‘일처다부제’의 개념과 정확하게 일치하진 않지만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죠.

    이런 말과 이데가 존재하는군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단어인데 최근에 몇가지 계기로 다시 살펴보게 되었어요. 동시에 여러명과 연애를 한다는것은 사실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일이죠. 영화 또는 드라마에서 가끔 쓰이는 주제기도 합니다만…

Polyamory 는 브레이킹 벤자민의 싱글앨범 수록곡이기도 한데, 가사를 살펴보면 이런 부분이 있어요.

My polyamorous friend,
Got me in a mess of trouble again
So just when you think that you're all right
I'm crawlin' out from the inside
-Breaking Benjamin ‘Polyamory

    다자연애를 하는 너에게 문제가 많다고 얘기하는 걸 보면, 아직은 서구에서도 절대적으로 허용되지는 않는 듯 하죠? 저에게 다자연애 라는 이데는 낯설고 생소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미국에 사는 친구와 얘기를 해보면 보통은 'Exclusive' (한 사람과 진지한 연애) relationship, Non-Exclusive (한 사람만 만나지 않는 형식의 연애) relationship 으로 연애하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실제로 한 사람과의 감정/성적인 관계만을 가지는 단혼(單婚, Monogamy)은 2명과 중복해서 혼인하지 않고 1명의 배우자만 두는 혼인형태, 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이데죠. 몇몇 국가에서는 일부다처제, 일부다처제 라는 형태가 정상화 범주에 속해있다고는 하지만요. 현재 결혼까지 안가더라도, 연애 선에서 이런 이데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다자간 연애를 추구하는 단체/모임도 있습니다. ‘LOVING MORE' (http://www.lovemore.com/)’ 이곳은 비영리 단체로, 다자간 연애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단체입니다. 미국 각지에 살고있는 다자간 연애자들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어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진다고 하네요. 이 모임에서 공동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대처방법을 고민을 나누겠지요.

    연애 중, 관계 속에서 어디까지가 바람이고 어디까지가 허용되는가에 대해 고민해 본적이 있어요. 사람마다의 기준은 각자 다르니까요. 저의 기준은 전에도 달랐고 지금도 명확하지 않으며 미래에도 바뀔 수 있겠지만, -한번에 여러 사람이 마음에 들어오는것이 바람직 하지 않는가- 만 놓고 보자면 확실히 얘기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람직하고 바름직하지 않은가의 잣대를 세울 일이 아니라는 것을요. 후에 취하는 행동 자체에는 당연히 책임을 져야겠지만, 한시간에도 수십 번 변하는 사람의 마음 자체에 죄책감의 무게를 지우는 기준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하고 있습니다.

    이런 연애 또는 결혼으로 이어지기 전에, 사람 마음이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허용의 기준을 어디까지 두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셀 수 없이 바뀌고 흔들리죠. 그 중 불안한 내 자신을 단단히 잡아줄, 인생의 동반자를 찾는 것은 아주 행운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동반자를 찾는 과정에서 나조차 완벽하지 않은 사람임을 인정한다면, 더 나은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더 나은 사람을 찾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