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 자유롭고 즐거운 보물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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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는 본인이 여자로서 살아오며 겪었던, 그리고 그녀의 동생이 생생히 겪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한다. 모든 목차는 영화와 연관이 되어있으며, 그를 따라 풀어내가는 그녀의 철학과 뒷 배경이 참 매력적이다. 작년에 읽었지만 북클럽에 뜨기도 했고, 문득 다시 한 문장 한 문장 마음에 박제하자 싶어 공부할 겸 읽었다.

 여자라는 존재에 사회가 갖는 온갖 것들을 나열하고 나서 아, 말하다 보니 짜증나서 첫 번째 글인데 벌써 조퇴하고 찜질방 가고 싶네. 라고 써놓은 문구에 박장대소 하고 난 후, 좀 더 집중해서 읽어 본다. 목차 하나하나가 주옥같고 모두 소중하지만 그중 가장 감명깊었던 국화꽃 향기. 아이보다 내 삶을 더 중시해도.

여성은 출산 기계가 아니고, 임신할 수 있는 몸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임신과 출산을 할 필요는 없다.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혹은 심지어 불임의 몸이어도 나는 여성이고 나의 출산 능력은 나의 가치를 결정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여성의 임신과 출산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할 것이다.

 최근 여성의 몸을 국가가 사회가 통제해온 배경의 한 부분이였던 ‘낙태죄’가 헌법불합지 판결을 받고 사실상 66년만에 폐지된 사례와도 관련이 있다. -혈연 중심의 가족주의나 여성의 신체를 이용하고 통제하는 국가와 자본주의-(본문) 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서 이루어낸 결과다. 여성의 몸은 복잡한 억압과 폭력과 이데올로기가 교묘하게 교차하는 전쟁터라는 작가의 말. 가슴을 꽃는다.

 ‘어머니 되기를 거부’하는 여성은 아기보다 자신을 중시하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인식이 아직도 도처에 깔려있음을. 지금도 난 아이를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지금은 모르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궁을 갖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꼭 아이를 낳아야해? 란 비슷한 발언을 하면 이 이야기를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지인 중에는 없지만) 십중팔구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이와 연결되는 ‘모성애’란 단어 또한 고찰 깊은 것 중 하나다. 모성과 어머니에 대한 명언이 모두 임신과 출산, 양육을 해본 적 없고 할 가능성도 없는 남자들이 남겼다는 사실은 모성 신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라는 위대한 글을 남기고 있는 이 책.


이 책의 빛나는 한 문장들을 옮겨본다.

”건강한 몸을 만드세요. 단, 우락부락하면 안됩니다!” 이 무슨… 모던하면서 클래식하고, 심플하면서 화려한 클라이언트의 요구 같은 헛소리죠?

아, 말하다 보니 짜증나서 첫 번째 글인데 벌써 조퇴하고 찜질방 가고 싶네.

성별 이분법은 개인을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 규정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얼마나 성별’다운지’를 감별하고 위계를 매기고 교정하려 들며, 수치심을 주입한다.

헤프면 어떤가? 헤프지 않다는 항변보다 중요한 건, 헤프고 말고를 결정하는 권력과 그 말에 담긴 도덕적 가치판단을 박살내는 일이다.

여자는 감성적이고 남자는 이성적이라는 오래된 데다 새빨갛기까지 한 거짓말. 남자가 그토록 이성적이라면 왜 홧김에 애인을 죽이는 것은 언제나 남자일까? 어째서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고 웃어야 하는 쪽은 여자일까?

경험과 생각에 한계가 뚜렷한 한 명의 인간이라 모든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서 완벽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받지 마라’ 가 아니라 ‘주지 마라’ 가 되어야 하고, ‘어떻게 받을지’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주지 않을지’ 가르쳐야 하는 이유이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꽤나 오랜 시간동안 ‘우아한 할머니’가 되는 꿈을 꿔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 꿈은 진작 산산조각 박살이 났다고 볼 수 있다. 우아함 또한 성별화된 가치이기 때문이였다. 초연함과 인내가 필요한 우아는 아저씨나 남자들의 몫이 아니라는 아주 간단한 원리를 나는 내 편한대로, 외면해온 것이다. 그저, 보기 좋기 때문에. 뭔가 있어보이기 때문에 이 ‘우아함’의 미덕은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꼭 갖춰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아함, 바로 작가가 말하는 통제와 관리의 목적으로 주입되는 이 개념에 사로잡혀 벌써 셀 수 없는 상황들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후회하고 다시 머릿속으로 반복재생을 해온 적이 정말 많다. 지금 생각해봤을때, 그 부당했던 상황속에 다시 놓인다면 나는 드세게 소리를 빡 지르고 욕을 퍼붓고 부당함을 온몸으로 드러내며 싸울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그 딜레마에 대해 써놓은 작가에게 내가 느낀 공감의 깊이란…

 사랑하는 자매들, 동료들, 그리고 엄마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통제 당하고 간섭 당하고 기만당하고 억제당해왔는지 낱낱히 알려주는 소중하고 또 소중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