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당신, 오늘 연습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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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t’s anticipation !


 무언가가 예상 될때 할 수 있는 말. Anticipation: 예상,예측 이라는 뜻이다. 마치 내 몸을 향해 오는 친구의 손동작의 움직임만 보아도 몸이 벌써 간지러운 것처럼 반응하게되는 것을 떠올리면 쉽다. 생각하기 전에-아니, 이미 인지하기 전에 내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랄까. 눈으로 따라가지 못하는 물체의탄성이나 빛의 속도 또한 그러한데, 예상되는 것들에 대하여 고찰해본다. 보통 어벙한 쪽에 속하는 나는 무언가가 일어난 후 뒤늦게서야 알아채는 편이다. 아, 이렇게 해서 저렇게 된거구나 를 되새기며.


 하여 나는 이 표현을 쓴 적이....손에 꼽는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나는 무언가를 미리 알아채거나 예상할 수 있는 능력 따윈 애초부터 갖고있지 않았다. 늘 한 박자 느린 무리 맨 앞에 서있는 선두라고 보면 된다. 내가 그나마 예측 할 수 있는 거라곤 내가 연주하는 재즈 스탠다드 악보의 코드진행 뿐이다. 그것도 몇년이나 걸쳐 리얼북을 통채로 달달 외운 후에야, 화성학을 머릿속에 구겨넣은 후에야 겨우 예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복잡하고 미묘한 사람의 심리나 정치판의 싸움 같은 일들은 내겐 늘 예상을 빗나가는 또는 그 밖 어딘가, 제4세계의 일이다. 그나마 음악이라도 붙잡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 멍청한 머리로!


 유유히 늘 한박자 놓치고 살던 내게 어느 날 한 질문이 던져졌다. 살면서 지겹게 들어왔었고 나 스스로 자신에게도 늘 묻는 질문이였다. 레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멍하니 바라볼 무언가가 필요해 더듬더듬 컴퓨터를 켜고 유투브를 튼 내 눈 앞 화면 검은 바탕에 왠 흰 글씨가 떴다. “오늘 연습했나요?” 아무런 배경음악 없이, 효과음 없이 말이다. 에라이, 하루종일 일하고 돌아온 내게 이런 폭탄을 던지다니! 뻔하지 뭐. 답은 아니요 였다. 물론 하기 싫어서는 아니였다구. 한 음악 유투버의 영상이였는데, 평범한 질문이였다고 치자. 하지만 그날따라 굉장히 아프게 찔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스트레칭-명상-Vaccai(classic voice workout)-목풀기-스케일 연습-그리고 그날에 따른 스탠다드 곡 연습 루틴을 빼놓지 않고 해온지 n년째다. 매일 to-do list 로 꽉꽉 다이어리를 채우고 밀려 다음장 까지 꾸역꾸역 쓰던, 지독히 철저했던 내가 어느날 부턴 해가 중천에 걸려야 겨우 일어나 멍을 때리기 바쁘게 된 건 대체 언제부터 였을까. 하루종일 음악만 생각해도 모자랄 판에 나도 모르게 차츰 멀어졌다. 나를 음악인이라고 규정지었던 많은 요소들을 나로부터 서서히 떨어트려 놓고 멀치감치 거리를 두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쉬고 싶었다. 지금까진 앞만 보고 달려 왔기에 내려놓고 싶었다. 열아홉 살부터, 연습 하루 안하면 큰일 나는줄 알고 살았다 (진짜로).


 하루 연습을 안하면 내가 알고, 이틀 연습을 안하면 선생님이 알며 삼일을 안하면 관중이 안다고 했던가. (정확하진 않지만 비슷한 문구가 있다) 지난 몇년 간, 온갖 유혹과 엄살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내 음악의 바탕이 될 노력들을 마다하지 않아왔다.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었지만, 중간 중간 쉬기도 쉬어야 했다. 잘 쉬는 것도 능력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난 100% 몰입을하지도, 100%쉬지도 못하는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애매한 중간의 아이였는데, 일을 할때는 쉬고 싶은 마음에 일이 더뎠고 쉴때는 일해야 하는데 걱정하며 온전히 쉬지 못했었다. 그게 문제였나?


 친구들에게 연락이 올때면 늘 뭐해?가 아닌 연습실이지? 였을 정도로 한때는 연습밖에는 몰랐던 시절도 있었다. 친구들은 늘, 내가 연습을 하고 있으리라는 것- 아니, 최소 연습실에는 있을 것이라는 데에 의심이 없었다. 나에 대해 ‘예상’할 수 있었던 한 부분이라면 무식하게 연습에 매달렸다는 점이다. 물론 연습실에 박혀있으면서 덕분에 얻은 것도 많았지만 잃은 것들 또한 많았다. 전부 나열할수 있을 정도는 아니기에 패스. 하지만 확실한것 한가지는 연습은 배신을 않는다는 것. 그리고 연습량은 각자 개인의 능력치에 따라 다르기에 무조건 오래 하는 것이 아닌 본인에게 맞는 연습방법을 찾아야 한다.


 생각해 보면 내 자신을 옭아매는 것은 다름아닌 내가 아니였을까. 어려운 길만 골라 찾는 능력은 대체 어디서 얻은건지, 욕심을 놓으려면 아예 놓을것이지 그건 또 못하고 고통은 반복된다. 늘 신경쓰이고 부족하게 느껴지는것은 다름아닌 개인연습이다. (합주와는 또 다르다) 그래서 다시 본론으로. “오늘 연습했나요?” 질문은다른 것들을 다 내려놓고 다시금 irealb pro(반주 어플)을 켜게 했다는 말씀. 아뿔싸, 시계를 보니 저녁 11시30분이다. 이웃에게 들릴까, 소곤소곤 노래를 시작했다. 기초 두바두바 부터 다시, 발음부터 다시, 발성부터 다시, 음정부터 다시...


 나는 천재가 아니기에 셀 수 없는 실패와 슬럼프로 나만의 연습 루틴을 만들었고 지금도 만드는 ing 중이다.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던가. genius is not born, is created. 그래서 하루 40시간! 아니.. 4시간! 아니.. 포모도로 연습법이라도 아침 저녁으로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예전 루틴을 찾을때 까지, 혹독한 훈련을 재개해야 한다. 습관은 참 무섭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반복하다보면 내 안에 쌓이는데, 이틀 안하고 삼일을 안하면 일주일 흘러가는건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무서운 시간, 그러나 모두에게 공평한 시간에게 지지 않도록 치열하게 싸워야 함을. (깨달았으니 다시 실천을..)


나를 깨운 한 마디가 당신에게 또한 닿기를 바라는 마음에 쓴 글. 그래서, 오늘 연습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