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ㅣ홍승은

침묵이 평화가 아니듯, 모른다고 폭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 홍승은
상식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언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유롭게 한다. -여성학자이자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생각이 없이 뱉은 질문은 ‘생각이 없어서’ 폭력이 된다는 말이 나온다. 학교는 어디 나왔어요, 결혼은 하셨어요… 숱한 생각 없는 질문들에 치여왔던 사람들 중 하나인 나. 이 책의 이 글귀를 읽고 나서야 동시에 그동안 사람들과 부딫히며 괴로웠지만 왜 괴로웠는지 몰랐던 이유를 찾았다. 그녀의 명쾌하지만 씁쓸한 이야기들은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에서 하나부터 끝까지,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글귀들로 가득하다. “이미 기울어진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언어의 한계에 부딫힌다.” 이미 폭력성을 내포한, 한마디로 배려심 따윈 없는 질문과 참견에 숱한 관계에서 너무나 오래 고통받아 왔다. 하여 이제는 질문하는 사람의 위치를 선점하거나, 질문을 받더라도 기본 전제를 비틀어 물어야 한다는 그녀의 말에 번개가 치는 듯, 깨달음이 따라온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녀가 연 고민의 연장에서 질문하는 공간이었던 인문학카페 36.5도는 다양한 페미니즘에 관한 고찰이 오고갔던 장소이다. 페미니즘, 인문학 등에 관한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며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절실히 바랬던 나는 아마도 갈 수 있는 거리였다면 이 카페에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을 지도 모른다. 공감을 이야기하는 공간에서 같은 경험과 개인의 삶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곳이라니, 그런 곳이 과연 존재한단 말인가. 카페에서의 경험과 그녀의 삶이 담긴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는 한국에서 ‘우연히 살아남은’ 20대 여성이 가정,학교,사회,학생운동,연애,우정을 통과하며 일상에서 겪고 느낀 순간을 기록한 책이다.
지금은 유명해진,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라는 명제또한 이 책에서 번복되고 있다. 그만큼 울림이 깊은 말이기도 하다. 만약 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다 라는 뮤리엘 루카이저의 말 또한 수많은 여성들의 어쩔 수 없었던 침묵을 대변한다. 이제서야 내가 겪어왔던 개인적인 일들이 오직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나는 너무나도 두렵고, 미안하고, 참담하다. 그렇기에 내 자신에 대한 성찰과 함께 우리 모두가 성찰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이 책이 한줄기 희망과도 같게 느껴졌다.
때론 누군가를 불편하게도 만들었던 존재가 되봄으로서 상황상 어쩔 수 없이 가시가 담긴 정직한 말을 뱉어야 할 때도 있음을 전에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내 자신이 불편한 존재로 놓여질 때가 많았으며 그 당시엔 왜 내 몸이, 내 생각이, 내 불편함이 오직 나만의 것이 되었어야 하는지 몰랐다. 그저 맨스플레인에 휘둘리고 남들에게 시선강간 당하는데 익숙했던, 곧세지 못한 생각을 가진 탓이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었을까.
보이지 않는 존재를 드러내고 보이지 않는 질문을 던지고 싶은 마음을 담아 썼다는 이 책이, 내가 여태껏 왜 불편해 왔는지, 얼마나 생각 없는 그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였는지 깨우치게 해주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는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만큼 우리 모두 불편하고, 함께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불편해야 하냐고 묻는 당신에게 건네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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