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이다혜 저자



 나는 어쩌다 인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회고하게 되었을까. 라는 시작하는 말을 여는 그녀의 책은 내게 어떠한 글과 어떠한 기준을 삶에서 ‘선택’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을 선사했다. 넓게는 ‘사회’, 세부적으로는 영화와 문학에 대한 글을 써온 작가님의 사상과 경험이 녹아 있는 책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는 작가이자 기자 ‘이다혜’이기 전에 사람 ‘이다혜’의 면모를 자세히 풀어놓은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생각한다고 믿는데, 개별 사안으로 들어가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단일한 사고방식을 가진 ‘모든 인간’ 같은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하나 다 다른 존재이며, 다른 기준으로 교육받고 사회화되었으며, 바라는 이상도 다르다. 이상적인 사회의 기준을 주관이 아닌 법과 제도에 두고 가능한 한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은 사람이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이유다. p197



 명쾌하지 않은 사안을 명쾌하게 풀어내는 멋져부림이 읽는 내내 계속된다. 알 수 있다, 이런 멋진 여성이 사회에 얼마나 필요했는지. 모든 ‘존경할 만한’ 사람은 남자 사람이자 연장자뿐이였던 좁은 내 세상에 동료 여성들을 모색하고, 응원하고, 내 자신부터 더욱 용기를 내 나아갈 수 있는 지혜를 주는 글은 많지 않았다. 아니, 사실 없었다. 그래서 더욱 반갑다.



소녀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취향을 만들어간다는 멋진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안경을 고쳐 쓰고 세상을 보는 눈을 수정해야 하는 건 아닐까, 혹은 앞으로 쓰게 될 안경에 대해 미리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여러분은 피할 수 없는 대중문화의 소비자가 될 것이고, 어쩌면 생산자가 될 것입니다...
’이미지’는 우릴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다. 여자가 사건을 해결하고, 여자가 사랑을 쟁취하는 이야기에서 얻는 여성의 이미지는 여러분이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마음 어딘가에 남아 인생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여태껏 내가 접했던 일상의 풍경과 대중문화는 대체로 남성의 시선에서 만들어졌고, 앞으로 접할 것들도 마찬가지 일거라는데 참 씁쓸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울어진 세상에서 우리는 당연히 기울어진 생각을 주입받게 된다. 한국에 가면 눈을 두고 싶지 않은 것들로 길거리는 가득차 있다.


 하얗고 부드러운 소재의,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입고 상냥한 미소를 띄고 있는 여성들의 입간판들. 편의점이며 은행이며 온갖 창문과 입구에 붙어있는 성적 대상화가 되있는 여성들 모습의 스티커를 보자면 참 복잡한 감정이 든다.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뭘 하든 평생 성적대상화가 된다. 그걸 책 속에서, 영화 속에서 그리고 내 삶 모든 곳 구석구석에서 자연스럽게 익히는 대상이 된다는 것. 간신히 내 자신만을 지키기도 버겁다. 두발 딛고 멀쩡한 척하기 힘에 부친다. 책에선 이러한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을 문학, 또는 영화와 접해 풀고있으며 우리를 둘러싼 얼마나 많은 것들이 섬세하고 집요하게 여성혐오를 외치고 있었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나는 늘 멘토를 꿈꿔왔다. 멘토까진 아니더라도 ‘가이드’를 제시해 줄 수 있는 나보단 성숙한 존재를 곁에 두고 싶어했다.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가이드를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고 전진할 수 있다면. 원하는 것은 단지 그것 뿐이였다. 가<이드 없음, 전진 가능> 챕터에서는 이러한 욕망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선사한다.


 스스로 해결하고자 고민하지 않은 질문을 남이 만든 기준으로 답해준다고 바로 달라질 리 없다는 의견은 신선하고 또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이다. 시대와 지역에 무관한 절대 가이드란 존재 할 수 없는 것이니까. 내 자신이 더 멀리까지 왔다는 믿음을 내가 썼던 글들과 공부했던 가치관의 낡음을 통해 볼 수 있다. 늘 새로운 배움을 갈망하고 실제로 행해야 한다. 변명하지 말고 도전하고 부딫히고 의식해야 한다.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는 두려워만 하고 늘 남의 뒤에 서기 바빴던 내 자신을 일깨워 주는 글이 가득하다. 단지 이 부분만이 아니다. 책 속 작가님의 사상과 경험은 곧 우리 모두의 일이고, 일이여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