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에서 만난 페미니즘 <운동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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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랑은, 대상화된 몸을 향한 사랑이었다. 날씬한 몸, 말라보이기도 하는 몸, 아무 옷이나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몸. 미국의 언론인이자 법조인인 엘리자베스 워첼은 저서 ‘비치(bitch)’에서 여성은 자신이 하지 않은 행동(그들의 외영과 투영하는 이미지)으로 우상화된다고 했다. 모든 여성은 나이, 인종, 지위, 계급과 상관없이 얼굴과 몸매, 인상을 평가받으며 일괄적으로 대상화된다. 어디에 가든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예쁜가, 날씬한가, 매력이 있는가를 따지는 집요한 시선을 피할 수 없다. (p.30) 운동하는 여자, 양민영


 저자는 대학에서 소설 쓰기를 전공했고 출판 노동자로 일하며 오마이뉴스, 한겨레 신문 등에 피미니즘과 운동, 싱글 라이프에 관한 글을 썼다. 비혼라이프를 쾌락으로 뺴곡하게 채우고 한다는 그녀의 책은 사실 내가 가장 읽고 싶었던 글이였으며 필요했던 글이였다.


 운동을 좋아하는 나는 중학생때 수구와 크로스컨트리(cross crountry) 등을 일삼으며 체력을 단련하는 일의 기쁨을 진즉 느껴온 케이스다. 물론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도움도 있었겠지만, ‘마른 몸’ 또는 ‘예쁜 몸’ 에 대한 강박증은 상대적으로 덜했던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며 자연스레 운동을 멀리하게 되었고 아주 가끔 운동에 대한 갈증이 심해질 때만 지루한 헬스장을 짧게 끊고는 했다. 주위에는 유도나 크로스핏 다양한 운동을 하는 ‘남자’인 동료들은 많았지만 ‘여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운동이 남성의 전유물은 아닌데 하는 옅은 궁금증은 나도 소위 말하는 팔뚝살 빼는 다이어트, 유산소운동 30일 다이어트 등을 일삼는 평범한 사회가 강조하는 루트를 밟으며 서서히 사라졌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걷는 세상. 그 방향성에 대해선 고찰하지 않는 사회. 아무도 질문하지 않음에 대해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중, 친한 친구가 밤길을 걷다 소위 말하는 ‘퍽치기’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23살이였던 그녀는 악기를 메고 집에 걸어가던 중이었는데 악기를 노린건지 아니면 그저 여성이란 이유였는지, 아무 이유없이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녀는 아무 손 쓸 힘 없이 당했다. 며칠 후 병원으로 찾아가 만난 그녀의 몰골은 처참했다. 그녀는 부은 입으로 내게 힘겹게 말했다. “나도 학교에서 힘 좀 꽤나 쓴다는 ‘여자’ 축에 속했는데... 남자가 맘먹고 달려드니 방법이 없더라. 놀라기도 했지만. 내 몸을 내가 지킬 수 없었어....”


 일상에서 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체력과 힘을 지니고 있는 것과 이런 범죄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사회는 또 자신의 몸을 지키지 못한 여성의 탓으로 또 얼토당토 전이를 하겠지-늦은 시간 밤길을 왜 걸었냐는둥?) 물론 범죄성의 의도를 가지고 힘으로 제압하려는 사람을 피할 수 있는 확률은 내가 얼마나 운동을 평소에 하는지, 또는 제압할 만한 힘이 있었는지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당하는 사람의 탓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작은 저항도 못할 정도의 체력차이가 나는 불특정에게 당했다는 것, 공포의 무력함은 그 사건이 있은 후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동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내 몸은 내가 지키고 싶은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것이 시작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운동, 미적 관점을 겨냥한 것이 아닌 건강한 ‘마음과 육체’를 쌓는 위주의 운동을 찾기 시작한 것은. 운동을 시작한다면 나의 체력과 힘을 기르고 땀을 흘림으로서 느껴지는 엔돌핀과 즐거움이 따라오는 것은 당연하며 범죄가 넘치는 동시에 많은 여성들을 다이어트나 마른 몸, 갸날픈 핏 등으로 옥죄는 사회에서 당당히 나를 지킬 수 있는 명분이 생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운동을 시작하면 따라오는 장점은 이보다 훨씬 많다. 일단 무엇보다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이 시급했다. 운동으로 다져지는 나의 자아와 성장이 더욱 갈급해지는 사건이 된 것이다. 14살에 하프마라톤을 완주했을때의 그 성취감, 방과 후 수구와 수영훈련으로 다져졌던 어깨근육이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왜 잊고 지냈을까, 나의 자아를 단련하는 그 뿌듯한 느낌을. 왜 단지 ‘여리여리 한 핏’의 옷 쪼가리나 남들의 시선 때문에 나의 성취감 마저 포기했을까!


 지금도 검색 사이트에 ‘할만한 운동’을 검색하면 다이어트 관련된 온갖 자극적인 광고와 특정 부위를 예쁘고 가냘픈 핏으로 가꾸는, 여성만을 타겟팅한 광고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더욱 힘든 것은, 평생 내제화된 여성혐오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지금도 진저리쳐지게 벗어나려 노력하는 부분이기에, 그렇기에 더욱 삶에서 운동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책에서처럼 내 몸을 긍정도 부정도 않고 과도하게 사랑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그저 받아들일 수는 없는걸까. (p.99) 이러한 초연함을 아직도 갈구한다는 저자의 말이 내 가슴을 울렸다. 나 또한 내 몸에 관한 성찰은 죽을때까지 계속될 것이고 개인만의 도구가 아니란 것을 공부를 함으로서 깨닫는 중이다.


 크로스핏에 빠진 지인이 아는 작가님의 책이라며 추천해주었지만, 사실 그 전부터 눈여겨 보고 있었다. 파리에서 이북으로 등록되기를 기다렸지만 더 참을 수 없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읽었다. 기대했던 대로 ‘여성의 몸’에 대한 현대적 고찰이 가장 심오하게, 다양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써있는 책이였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도 서술되어 있어 깊은 공감을 느끼기도 했다. ‘운동하는 여자’는 내 주위 여성들에게 모두 추천하고픈 책이다.

우리의 몸은 너무나 강하고 위대한 동시에 공격받기 쉽고 폭력에 취약하며 복잡하고도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