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빛이 내 안을 통과하듯 내 자신을 지킨다는 것
상처받은 마음에 위안을 얹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시간이다. 자책도, 원망도, 두려움도 시간을 이기지는 못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은 그만큼 쓴 인내를 요구하고, 얻어지는 과정 또한 고통스럽다.
경외감이나 두려움은 신이나 자연현상 같은 절대적인 것들에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듯이 내가 관계에서 얻는 몇 성찰은 대부분 사소한 두려움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다름아닌 질투라는 감정이다. 시샘과 질투는 내가 부족하여 겪는 심리만은 아니며 어떠한 여러 학문의 한 경지에 오른 전문인들 조차도 종종 겪는 흔한 현상축에 속한다. 그렇다면 질투의 본질은 무얼까. 이는 초연함을 이기지 못하는 심리일 뿐이며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질투의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은 의지대로 멈출 수 없다 해도, 내게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닫는다면 멈출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무언가를 욕망하고 충만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였을까? 상대방은 무엇이였을지,본질적으로 관계란 무엇일지 등 수 많은 질문들이 머리를 가득 메우고 있지만, 쉽사리 대답할 수 없다. 두렵고도 행복했던 나날 속, 내가 갈망하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라틴어는 신체적인 상처와 정신적인 상처를 구분하여 표현했다고 한다. ‘불네타리오’와 ‘불누스’가 대표적으로 치욕이나 명예 손상, 체면을 구겨서 생긴 아픔이나 고통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내적 상처란 무엇이며, 마음속 갈기갈기 찢어져 남은 조각들을 현대인들은 어떤 방법들로 치료하고 극복한단 말인가.
지난 삶을 반추하고 있다. 참된 의미의 관계와 사랑의 본질, 그리고 타자에 대한 연민을 성찰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안일하고 나이브했던 나는 늘 무참히 버려지는 쪽이였다. 최선을 다하고, 후회없이 사람을 대하려 노력하건만 돌아오는 것은 반면 모래 부스러기에 불과한 것들일 뿐일 때가 대부분이다. 많은 관계에서 경험했던 바이기에, 이제는 좀 단단해졌다고 생각했건만 몇번을 겪어도 의연해지기는 커녕 더욱 취약해지는 나. 이런 내가 싫다고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고 싶은 밤이다.
전에 썼던 ‘위로가 필요한 파리의 밤’에서의 글처럼 새 사람이 내 삶에 조금이라도 발을 들여놓았다 나가는 때면 내 마음은 초토화가 되어버린다. 평화롭던 정원에 맷돼지 한 마리가 쑥대밭을 만들어 놓고 도망가버린 격이랄까. 그 맷돼지가 왜 그랬는지, 왜 나의 정원에 심어놓은 꽃들을 모두 꺾어 버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이렇게 또 배운다. 물론, 감정을 혼자 다독거리며 명상을 하고 시간을 두는 등 온갖 고독한 발버둥을 침으로서 고통이 서서히 옅어지는 것이 맞다고 볼 수 있겠지만.
사실 우리의 사고가 각박하게 변해버린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나빠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낼 여유가 점점 없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의 치부에 대하여 고찰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 마음을 자세히 벗겨보면 상처를 받은 것은 내가 아니다. 타인의 행동과 말을 거울처럼 통해 내 안의 약함과 부족함을 확인하는 것,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었기에 아팠던 것이다. 어떤 일과 제대로 직면했을 때 상처를 받음은 절대적인 나만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다. 물론 완벽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기에 그 누구도 원망할 순 없음 또한 잘 알고 있다. 상처는 나의 약점이나 단점을 확인시켜주기에, 그것을 통해 내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기회로 삼자는 다짐을 또 하지만 씁쓸하고 아픈 마음을 이내 감추지 못함에 늘 아쉽다.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늘 아이같이 사람의 순수한 진심을 바라보고 싶어하고, 그들의 말이 아닌 눈을 통해, 영혼을 통해 바라보고자, 이해하려 노력했던 내가 바보인걸까? 시간이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는 명언처럼 사랑 만큼은 가장 순수한 형태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였을 뿐이였는데. 물론 이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약함을 드러내고, 가장 순수하게 나를 바라봐주는 한 사람을 찾는 여정은 앞으로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몇달 간 내가 떠올린 사랑의 본질에 대하여, 그 의미에 대하여 고찰해옴은 결국 나를 더 강하게 만들 기회로 거머쥘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서서히 그 경지에 도달 하리라 믿는다. 지금은 죽을듯이 아프더라도, 이 아픔 또한 후에 더 아픈 이를 위로하고, 곁에 남아줄 수 있는 단단함으로 다져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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