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 이후, 세상은 달라졌을까?
길거리나 대중교통 수단 안에서 성추행하면 90∼750유로(12만∼100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 성적 수치감이나 모욕감을 주는 발언이나 행동도 금지된다. 사이버 스토킹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여성 치마 속 몰래카메라 촬영도 불법화했다. 여성 신체를 동의 없이 찍으면 최장 1년의 징역형과 1만 5000유로(20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이 법은 또 성인과 15세 미만 어린이의 성관계에 대해 어린이가 동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뤄지면 성폭행으로 규정했다.
아니, 길거리나 대중교통 수단 안에서 성추행 하거나 불법촬영을 하는건 당연히 잘못된거지. 어린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이런건 당연한거 아냐? 라고 얘기하는 당신, 이 법은 지난 8월 1일 프랑스 하원에서 의결된 법안으로 바로 오늘부터인 9월부터 적용되는 법이다. (LOI n° 2018-703 du 3 août 2018 renforçant la lutte contre les violences sexuelles et sexistes )
한달 전, 파리 길 한복판에서 지나가는 한 여성에게 어떤 남자가 자극적인 욕설로 성적 모욕 발언을 던졌고 거기에 그 여성은 ‘닥쳐’라고 대답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남자는 재떨이를 잡아 여자를 향해 던졌고 다가가 여자의 뺨을 후려쳤다. 훤한 길거리 한복판에서, 보는 사람이 10명도 넘는 곳에서 말이다. 옆의 레스토랑에 있던 몇몇 사람들은 달려가 그를 저지했지만, 그를 막지는 못했다.
피해 여성은 사건 후 옆에 있던 레스토랑의 씨씨티비를 확보한후 본인의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이 비디오는 프랑스 뿐만 아니라 전세계게 파장을 일으켜 즉각 검찰에서 조사를 시작했고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도 증언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섰다. 이 여자는 당신이 될수 도 있었고, 내 친구가 될수 도 있었으며, 당신의 딸이 될수 도 있었다. 후에 인터뷰에서 그녀는 내가 그의 모욕 발언에 대응하면 그가 다가와 폭력을 행사할 것임을 직감했지만 물러설 수 없었으며 굴복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비 웨인스타인의 더러운 성추행을 폭로함으로 시작된 미투운동의 물결을 타고 새로운 성범죄 방지법들이 국회에 제정되기 시작했고 이 피해 여성의 케이스인 여성 대상 범죄 방지법도 추진되었다.
아무리 대낮의 길 한복판이라고 해도, 한 남성이 욕설과 성적 모욕발언을 퍼부으며 마음먹고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려 달려든다면, 거기에 맞설 수 있는 여성이 얼마나 될까? 여성들 대부분이 이런 공포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현재 여러 관련 법안들이 통과되었지만 실제로 여성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피해 여성 마리아 라게르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라고 답한다. 우리 생활속 곳곳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성희롱 행위를 어떻게 다 직접 현장에서 적발할수 있냐는 이야기다. 경찰이 길거리 곳곳에 배치되어야 하나? 아니면 골목 곳곳에 씨씨티비를 달고, 즉각 경찰이 올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나?
한번쯤은 누구나 타인으로 인한 공공장서에서의 불쾌한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온전히 ‘나만 알고있어야 하는’, ‘감추어야 하는’, 또는 ‘창피한’ 일이 아님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위의 사례와 같은 ‘성추행’ 또는 ‘성폭행’들은 너무나 먼, 픽션같은 얘기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일본 사법시스템과 맞서 싸우는 이토 시오리의 논픽션 ‘블랙박스’ 에서 그녀는 얘기한다. 저널리스트인 그녀는 유명 방송국의 간부 야마구치 노리유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신고에 ‘성공’ 을 하고 사건은 ‘접수’가 되었지만, 결국 불기소로 종결됐다. 이 결정에 납들하지 못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내게 된다.
피해 신고서와 고소장에 서명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경찰에 가면 자연스레 사실이 밝혀질 것이고 경찰이 다 조사 해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몇 번이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돌아오는 것은 ‘어렵다’와 ‘안 된다’는 말이었다. ‘사실’이란 이토록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블랙박스> 중에서
그녀가 얘기하고자 하는 ‘피해자’로서의 사람들의 인식은 진정한 피해자들을 더 죽이는 것이라고 한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내 가족에게는 당연히 없을 일이니 무관심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라고 하는 여자들이 옷을 잘 못 입었겠지. 괜히 위험한 곳에 갔겠지. 잘못할 짓을 했겠지. 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다. 여성들은 길을 걷다가도, 대낮에 공공장소에 있더라도, 당신과 똑같은 옷을 입더라도, 이런 위험에 늘상 노출되어 있다.
다만 나는 ‘피해자는 단추를 목까지 채운 하얀 셔츠 차림으로 슬픈 듯이 하고 있는 법’이라는 누군가가 만들어 낸 우상을 부수고 싶었다. 무엇을 입었든 입지 않았든 비난당해서는 안되며 그것이 피해를 당한 이유로는 지목되어서는 안된다. 기사 속에서 나는 여전히 이름도 얼굴도 없는 ‘피해 여성’ 이었다. 나는 ‘피해자’ 라는 이 피할 수 없는 말이 따라붙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피해자는 내 직업도 아니거니와 내 캐릭터도 아니다.'블랙박스'중에서
여기서 마리아 라게르와 이토 시오리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왜 수많은 여성이 ‘피해자’가 되어야 하며, 그것을 방관하는 사회와 무관심한 정부속에 살아가야 하고, 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움츠러들어야 하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 현재 라게르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나서는데, 자신처럼 길거리나 직장, 사적인 장소 등에서의 성희롱과 폭행 피해를 공유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다. 공공장소에서 성희롱이 얼마나 다반사로 일어나는지 실태를 통해 심각성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길거리에서 성희롱하면 최대 100만 원 벌금, 서울신문) 이토는 영국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사법 기자 클럽 회견 이후 뉴욕 타임즈, BBC등 해외 유수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성폭행 피해 사실과 함께 일본의 사법 시스템에 대해 고발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쳐 나가고 있다. (성폭행 피해자에게 '언제 실수했냐' 묻는 사회, 오마이 뉴스)
프랑스 현 대통령 임마누엘 마크롱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이상 여성들이 밖을 두려워 해선 안된다고 선언하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프랑스 젠더평등부 장관인 마를렌 쉬아파는 전에 성추행과 추파를 던지는 것 사이의 범죄 기준을 설립하는게 어렵지 않냐는 질문을 받은적이 있다고 한다.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거리에서 협박과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한 그 시점을 모를것 같은가. 그 질문을 하는 당신이 얼마나 성범죄에 대해 무지하며 성추행을 한번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란것을 쉽게 알수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도 여성들은 길거리에서 수많은 희롱과 추행을 당하고, 묵인할 수 밖에 없는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미 미국의 많은 주를 비롯해 유럽의 독일, 프랑스는 길거리에서 여성들이 당하는 피해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선언후 관련 성범죄 대책/방지 법안을 통과했다. 각각의 법회는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를 추진해왔으며 이번 입법 조치가 성범죄 억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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