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방법들>

짧게는 오늘, 길게는 1년까지의 Planning을 만들어 늘 머릿속에 책장처럼 정리해두는 편이다. 어렸을 적, 하교 시간에 차를 몰고 나를 데리러 오는 어머니를 기다리던 (핸드폰이 보편화 되지 않았을 때) 기억부터, 지금 아이폰의 모든 기능을 전부 다 쓸 수 있는 사람은 드물 정도로 발전한 테크놀로지의 시대에 사는 현재까지 기록의 습관은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나만의 노트에 내 펜 (여기서 '나'의것이라 지칭함은 수년간 수많은 구매와 사용을 거쳐 지정된 내 고유의 특성을 가진 것)으로 죽, 죽 선을 그어 주 단위로 달력을 만드는 것. 조그마한 칸이 만들어지면 그 안에 내가 해야 할 일들, 짜여진 약속들, 그리고 일정이 없는 빈 시간까지 한 번에 눈에 보이기 때문에 몰랐던 때보다는 비교적 시간을 덜 낭비하게 된다. 하지만 맥북과 아이폰, 아이패드까지(몇 달 전) 소유했던 나는 클릭 한 번에 모든 게 동기화되는 편리한 이 테크놀로지와 손으로 정리하는 기록의 습관 사이의 괴리에서 무척이나 고민했었던 것. 손으로 노트에 정리하고 나서, 맥북에 또 같은 내용의 이벤트를 만들고, 핸드폰으로 동기화되는 것을 본 후 집 밖을 나갔으니 뭔가 실용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캘린더 뿐만이 아니다. 노트도 마찬가지로 문득 지하철을 타다가도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펜과 노트를 꺼내 기록하는데, 어떨 때는 이걸 핸드폰으로 옮기기가 귀찮아 사진으로 찍어놓기도 했으니.. 글-사진-타이핑-손글씨 이 복잡하고 다양한 기록의 작업들을 어떻게 단순화 또는 통일화 시킬 것인가, 는 사실 아직도 고민하는 주제.
Image: Moleskine
몰스킨 Moleskin에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최근 Smart Writing 공책을 선보였다. 아주 작은 마이크로칩들이 내장된 공책으로, 이 센서들이 감지할 수 있는 펜 (과같이 구매해야 함) 으로 그 공책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지정된 핸드폰이나 컴퓨터 앱에 Sync 되어 그대로 옮겨지는 신선한 기술인데.... 이것이 과연 쓰고, 또 타이핑하고, 공책을 꺼내서 확인하다가, 또 핸드폰 속 자료를 찾아야 하는 그 번거로움을 한 방에 해결시켜 줄 것인가 라는 의심은 아직 가시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로는 아직 사용해보지 못해서. 가격면 접근성의 벽이 높다. 공책과 펜으로 구성된 세트의 가격이 $199로, 한화로 약 23만원이 넘는다. 게다가 노트는 재활용 할 수 없으니 다 쓰면 당연히 또 구매해야 할 것이고, 가끔 떠오르는 잡생각들을 마구 쓰고 싶을 때도 있는데 노트 한장이 아까워서 쓸 수 있을까? 구글에 리뷰를 찾아보면 가장 윗단에 명시되는 부분이 가격책정에 대한 아쉬움인데 공책과 펜 하나에 23만원이라니, 얼리어답터도 아니고 그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일 수 있다.
굳이 손글씨를 고집하는 이유로 또 한가지는 이 신기한 기술의 발전을 뒤로하더라도, 공책과 컴퓨터, 핸드폰을 죽 펼쳐놓고 열심히 옮겨가며 정리하는 과정에서 창출되는 아이디어들도 의외로 빈번하기 때문. 더군다나 부지런해지는 경향도 있고. 역시 1000원짜리 공책에 뻘글을 마구 적어대는 그 참맛을 잊을 수 없어 이런 혁명적인 기술을 외면 아닌 외면하며 불평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smart writing set 는 한 번은 꼭 써보고 싶..) "실력엔 밀리더라도 장비에는 밀리지 말자" 친한 형이 자주 해주시는 말이다. 역시 모든 건 장비빨인가 싶지만 이건 아직 안써봤으니 무효. 흐음… 어찌됐건 중요한건 생각하고 글을 쓰고 정리하는 노력을 한다는것(!?) 지금 쓰고있는건 무지공책으로 커버가 있는 얼굴만한 공책인데 거의 다 써서 마침 끝이 보이니 사러 또 부그르넬을 가야 할듯 하다. 만원도 안되는 공책인데 단단하고 종이 질도 좋아 어디서든 꺼내 쓰기 편리하기 때문에 몇년째 쓰는중. 이번 공책은 6월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거진 3개월 썼나. 선 간격도 적당하고 스프링도 튼튼해서 가방에 마구 던져놓아도 끄떡없어 좋다. 가성비 갑인 공책을 찾는 분들, 이 하드커버 공책 추천합니다. 얼마전 습작노트를 공개하신 @kyslmate 님 소환해요. 좋은 공책과 펜이 있으면 공유 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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