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진 무대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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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고 작은 무대에 서왔다. 상업적 행사, 즉흥무대, 자선공연 등 여러 다양한 무대가 내 커리어에 기록처럼 쌓여져있다. 수를 셀 수는 없지만 그 경험의 깊이는 마음에 새겨져 있다. 무대는 한 사람만이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여태 내가 설 수 있었던 모든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늘 고마움을 품고 있다. 여태까지 쌓아온 ‘나’의 모습에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무대, 그런 무대위의 나를 실현 시켜줄 수 있었던 그 시간에게도 감사하다.

    여태까지의 가장 떨렸던 무대는, 고등학교때 Choir 합창단 오디션 무대였다. 주에서 가장 치열한 입학 경쟁률을 자랑하는 합창부가 있는 학교를 다녔는데, 처음 공연을 보고서는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내 모든 감각이 꽉 차는 경험을 한 이후, 나의 목표는 오직 그 합창부에 들어가는 것이였을 정도. 오디션 전 날 밤, 엉덩이 까지 오는 긴 흰색 셔츠에 검은 유성 매직으로 앞 뒤에 그림을 그리고 나만의 무대의상이라며 입고선 어머니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뜬금없는 딸래미 재롱잔치에, 그것도 한참 우스꽝스런 모습의 쇼에 박수를치며 즐거워 하셨던 얼굴이 지금까지도 큰 힘이 되고 있다.

    내 첫 오디션곡은 ABBA 의 Dancing Queen. 지금도 청소할때 틀어놓으면 흥을 돋구는데 이만한 곡이 없다. 청소기를 마이크 삼아 립싱크하며 춤추기도 딱 좋고. 생각해보면 딱 그정도였다. 내가 노래를 해야겠다고 간절히 바란 마음은, 그 정도의 즐거움으로 부터 시작했던 것.

    무대를 준비하고 마치며 집에 돌아가서 곱씹고 영상을 번복해 돌려보고 다시 레퍼토리를 재정비해 무대를 세우는데 까지 수많은 좌절과 성장이 존재했다. 현재는 파리에서 내 이름으로 공연을 올리려 준비를 하고 있는데, 사실 이 텀이 학업과 이어져서 석사과정과 동시에 이루어지려니 계획보다 길어지고 있고, 그래서 또한 무대의 목마름이 심해지고 있는 듯.

    동료들에게 초대되어 Jam에 조인하거나 여러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 무대 또는 버스킹은 쉬지 않고 해왔으나 내 이름만을 내걸은 공연을, 그리고 그 공연 티켓값에 부족하지 않은 무대를 올린다는 일은 객원으로 참가하는 바와 의미가 절대적으로 다르기에 그만큼 준비기간이 더 길어지고 있다. 무대를 쉰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한다고 할 수도 없는 무와 유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좋은 결과가 나올지 늘 고민하고 있다.

    가수 자이언티가 방송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선배가수의 조언을 듣고, 무대가 다 끝나고 장치가 내려진 뒤의 적막하고 고요한 무대에 혼자 가만히 남겨져 보았다고. 완벽주의로 알려진 그가 그 조용한 무대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왜 그 조언을 받아들였을지 십분의 일이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사람들이 가득찬 공연장과 텅 빈 공연장은 아예 다른 곳이기에...무대를 이해하는 것은 곧 나의 전부를 드러내고, 이해해야 하는것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누구인지 상기시켜주는 곳은 일터라고 줄곧 생각해왔는데, 그 일터를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나만의 공간으로 꾸며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연구하고, 사랑을 나누고, 고찰하다 보면 만들어질 나만의 작은 일터. 언젠간 완성될 그곳을 오늘도 상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