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과 곰팡이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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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와 전화로 대화를 나누던 중 일어난 일이다. 서로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피는 말을 건네면서 안부를 물으며, 내가 우울증 약을 먹게된 데 까지는 다양한 분석이 존재할테지만 결정적으로는 내가 마음이 약해서 그래- 라는 식의 변명 아닌 변명이 나왔다. 마음이 좀 안좋아? 라고 묻는 친구의 물음에 내 최근 상태의 미적지근함을 대변하는 설명이었달까.

 그러자 친구는 꽤나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그건 너가 마음이 약해서가 아냐. 그래서 난 되물었다. 아니라고? 친구는 한치도 망설임 없이 예를 들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집엔 곰팡이가 있어. 구석 구석 검정색 곰팡이가 없는 곳이 없어. 아무리 닦아내도 군데 군데 퍼진 곰팡이는 아예 박멸하기란 불가능하더라. 그런데, 우울함도 그런 거야. 원인이 중요해. 한번 마음에 생긴 우울함이 없어지지 않는 것은 멘탈의 문제가 아니라구. 사람이 살다보면 우울할 날도 오지만 그 날에 무너지지 말아야 하는 거고.

 나는 아니아니, 이런 얘기 (내 얘기) 말고 좀 더 생산적인 대화를 하자. 요새 일은 좀 어때. 뭐가 힘들어? 물었더니 친구는 퉁명스럽게, 그러나 다정하게 대답했다. 이게 생산적인 대화지 뭐야. 너 얘기 듣는거 좋으니까 계속해.

 그 말에 눈이 팽 도는 것 같아 잠시 이마를 짚었다.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이러한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곧 깨닫게 되었다. 나는 괜한 자책의 늪에 또 빠져있었던 거였구나. 내 자신의 이야기를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꺼내지 않으려 했건만, 그렇게 기피했건만 역시나 오래된 인연은 단번에 나를 꿰뚫어 보는 것이다. 한사코 싫다는데도 기어코 손을 내밀어 예상치 못했던 따스함을 전해준다.



 우울함과 곰팡이. 이 두 변수간엔 어떠한 선형적 관계가 존재할까? 이 우울함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이런 공개적인 일기에 씀으로서 나의 우울함의 무게는 조금이나마 가벼워질까? 그러다 말도 안되는 기대감과 어설픈 글실력으로 끙끙대지 말고 지나간 편지나 꺼내 읽자 싶어서 아주 오랜만에 판도라의 상자라 불리우는 지난 (옛 추억이 가득한) 폴더를 열었다.

 판도라의 상자엔 각종 다양한 추억들이 빼곡하다. 참 착실히도 저장해 두었다. 마치 혹독한 겨울을 대비하는 다람쥐가 버텨낼 식량을 꽉 꽉 채워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다른때는 무디면서도 이상하게 이런 것들은 소중히 숨겨둔다.

 지난 날의 나는 꽤나 진지한 마음을 대변해주는 마음과 편지를 종종 받곤 했다. 그때의 기억으로 어느 순간은 살아간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 추억은 꽤나 긍정적이다. 당시 내가 썼던 손편지를 꺼내 읽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한데, 손 발이 오글 토글 거릴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도 않다. 담백하면서도 로맨틱한, 진심이 담긴 글을 종종 썼는데 그 편지가 주인에게 찾아갔는지는 기억이 잘...

 스물 네살에 썼던 편지 속, 다시 읽어 보니 내가 이런 글을 썼나 놀라울 정도로 신박한 표현이 가득했다. 당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알 수가 없다. 전부 옮길 수는 없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굉장히 상반된 내용으로 끝을 맺기에 당시 꽤나 복잡한 마음이였던 자신이 보인다. 물론 그 어렸을 적 받았던 진심들을 떠올려보자면 단연코 행복했었구나, 그리고 참 많이 어렸구나를 짐작할 수는 있지만.


 편지에 삐뚤 빼뚤 쓰여진 아름다운 말들로부터 적지않은 위로와 사랑을 받았고 감사한 시간들로, 좋은 사람들로부터 회복했던 옛 기억들이 새록 피어났다. 얼마나 그 사람의 마음이 소중했으면 받은 편지들을 파리로 가져와 아직까지 간직하기까지 하는지 참.

 오래된 편지는 지진만큼이나 마음을 흔드는 힘이 서려있지만 이 또한 종이일 뿐임을 잊지 않는다. 진심이 담겨있지만 이미 사그러든 마음임을 잘 알고 있다. 일방적인 미련임을, 이불킥 할 회상일 뿐임을 모를리가 없다. 하지만 좋지 않나. 사람은 각자 다른 형태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각기 다른 크기, 모양일 그 마음 중 하나를 받았다는 것을 떠올리는 것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선사한다. 나도 아낌없이 사랑을 주었다는 사실 또한 그러하다. 물론 준것보다 받은게 더 많은 것 같지만..

 좋은 날을 만드는 건 좋은 마음가짐의 나이다. 어떻게 사람이 행복하기만 할 수 있는가. 적당한 바란스를 추구하며 살면 되지.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마음이 현재에 있어야 행복하다. 마음이 과거에 있으면 후회하고 미래에 있으면 불안해 한다 라는 말은 틀린 부분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 현재에 두발 붙이고 살아내며 우울해야 과거로 끊임없이 반복해 돌아가는 슬픈 삶 보단 낫지 않을까.


 며칠간 정신없이 시험준비에 매진하던 일상속 단조로움을 깨트려준 친구와의 대화가 참 고맙게 느껴졌다. 종종 내 글을 읽고 그 주제로 이야기하는 친구이기도 한데, 언제쯤 본인에 대해서 써줄거냐며 닥달하기도 하는 웃긴 또한 그만큼 오래된 친구다.

 어느 순간 그저, 놓아지게 된다. 내 힘으로, 내 의지만으로 쥐어지는 것이 별로 없다. 삶의 많은 부분이 그렇고 악에 받쳐 기어코 놓지 않으려 했던 사람과의 관계또한 그렇다. 사람을 대할때,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예우란 무엇인가. 연락하지 않아도 늘 그렇듯, 시간은 참 성실히나 흘러간다.

 처음 대학 문을 밟던 순간부터, 따듯하게 잡았던 손들, 그리고 질풍노도(?)의 정신없던 20대. (아직도 20대긴 하지만...) 그걸 한켠으로 다 지워버리고 나서 다시 소통의 창을 열었을때, 이젠 더이상 흔들리지 말자 결심 했었다. 하지만 난 역시나 또 다시 흔들리고 있고, 당장 내일 어떻게 살아내야할지 전혀 알 길 없는 철부지 어른아이다. 그래서...결론이 나왔네. 머리가 복잡할땐 뭐다? 연습하자. iRealb 를 틀고 기본부터 다시 하자. 그러다 여유가 생기면 땅다방으로 카푸치노 한잔 마시러 가는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