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고찰
아주 오랜만에 치장을 해야 하는 일이 생겨서 풀메이크업을 한 날이었습니다. 거울 속 내가 너무나 이질적이게 느껴지는 낯선 하루였어요. 메이크업 make up, 즉 가화, 가식의 의미를 내포하고 실제로 아름다운 부분을 돋보이도록 하고 약점이나 추한 부분은 수정하거나 위장하는 수단을 가르키는데, 무대에 설 때가 아니면 꾸미는 일이 잘 없는 저는 얼굴 위에 분을 칠하는 행위가 굉장히 불편하다고 느껴요. 사람마다 각자 놓는 부분이 다르겠지만 사회에서 여성에게 유독 강요되어 지는 화장이란 행위를 놓게된 과정을 생각해보았는데, 사실 아주 간단합니다. “화장을 함으로서 내가 얼마나 불편한가" “왜 나는 불편해야 하는가” 였어요. 나에게 지워지는 남들의 시선과 편견과 잣대를 '내' 기준에서 생각해보면 고민할 필요가 없거든요.
제가 느끼고 경험해 온 결과물을 놓고 보자면 그렇다는 말이지, 꾸며야 하는 일은 단순히 '개인' 문제로 취급해버리면 안돼요. 안꾸민다고 죄책감이 들거나 또는 꾸밀때 자신감이 든다고 느껴지는 내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보고 자라온, 사회가 만들고 강요하는 ‘주체적 꾸밈’의 허상과 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게다가, 꾸밈 노동과 사회가 규정하는 ‘여성의 미’에서 탈피하려는 갈등은 그 과정을 겪지 않은 사람들, 또는 그걸 부정하는 사람들이 왈가왈부 할 문제가 아니기도 하죠. 신조어인 탈 코르셋 이라고 하는 단어는 벗어나자는 뜻의 '탈'(脫)과 여성 억압의 상징 '코르셋'(corset·체형 보정 속옷)을 결합한 말로 '꾸밈 노동'으로 상징되는 여성 억압적 문화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는 운동 입니다. '화장' 은 그 수많은 억압의 상징 중 하나에 불과하고, 수많은 깨어나고 있는 여성들은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나고 자란 배경으로 이를 탈피 하려는 내적, 외적 갈등을 겪고 있죠.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겐 별일 아닐 수 있는 사소한 일일지라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화장품은 필요 이상으로 상품을 구매하도록 짜여진 소비사회의 대표적공산품이다. 화장은 얼굴의 체계를 만들고, 얼굴을 모델에 따라 대량 생산한다. 성 상품화와 소비사회의 강요된 미의 정형과 관련이 있으며 이미지와 기호에 의해 표시된 것으로, 미의 기표가 계산되고 그 계산에 따라 구성된 미를 가공하는 것. 끊임없이 유행을 만들고 새로운 현실원칙을 생산한다. - ‘2000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
탈코르셋은 화장을 안해야만 진정한 일인가? 페미니스트는 숏컷을 해야만 진정성이 있는 사람인가? 는 이 말들에 대한 ‘기준’ 을 생각해보야 함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왜’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사람들은 태어날때부터 긴모종/단모종으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모두가 똑같이 태어나는데, 머리가 길어야만 ‘여성’이고 짧은 머리를 가진 여성은 ‘남성’스러운 거라고 규정하는 사회. 그걸 규정하는 기준, 쉽게 말해 ‘short cut’ 숏컷 / 단발 이라는 단어 자체도 긴머리를 여성의 디폴트(default:기본값)로 놓고 만들어진 말입니다.
회사생활, 또는 집단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 친구들, 동료들은 종종 하소연을 하곤 합니다. 바로, '여성의 미' 로 치부되어있는 많은 기준들에 맞춰 살아야 하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다고요. 많은 여성들이 회사 직원 또는 동료로 동등히 존중을 받는 위치가 아닌, 잘못된 인식의 ‘여성'이란 캐릭터로 치부되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큰 박탈간과 허망함을 느끼죠. 오히려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이제는 대충 맞춰 살고 눈가리고 아웅을 하는게 낫다고 느낄 정도니까요. 실제로 친구들은 화장을 하지 않거나 치마를 입지 않고 회사에 출근했다는 사실만으로 동료 앞에서 상사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은 경험이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상사라는 사람의 여직원을 대하는 기준은 다른 남직원들과 동등한 위치의 '사원' 또는 '직원'이 아닌 뒤틀린 기준의 여성의 상인 것입니다. 만연한 '여성'에 대한 차별과 그를 의식하지 못하는 여성을 향한 무지한 행동들을 너무나 많이 그리고 자주 마주치는 것이 현실이에요. 그리고 그 기준을 강요받는 입장에 선 수 많은 여성들에게 화장은 단순히 '취향'과 '존중'은 논점 외인 일이며, '생존'의 문제입니다. 만연한 차별의 공기는 단순히 한 회사와 사람과의 관계에서만의 일이 아니라 생활과 생각 속에도 아주 촘촘하고 깊숙히 침투 되어있죠.
소비사회란 필요 이상으로 사상품을 구매하도록 하는 ‘환각의 체계’이다. 그 대표적 소비상품이 화장품이다. 여성들은 몸의 미세한 부위별로 화장품의 품목을 구비해야 한다. 그것은 기능별로, 색깔별로, 혹은 돈에 따른 무수한 차이를 요구한다. 화장은 일종의 제도이다. 성의 상품화와 소비사회의 강요된 미의 전형과 관련되는가 하면 여자들의 일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인공의 미를 대표하고 감각과 관능, 전형화 된 미의식, 소비적인 아름다움의 욕망과도 깊게 연루되어 있다. 이른바 화장이라는 것은 이미지나 기호에 의해 표시된 것 즉 브랜드화 된 것, 미의 기표가 계산되고 그 계산에 따라 구성된 미를 가공하는 것이다. - 박영택, 레이벨갤러리
여러 층과 면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퍼져있는 안타까운 상황은 결국 끝까지 모든 프레임과 잘못을 여자에게 씌우고 있어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얼마나 다층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문제인지 어렵습니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탈코르셋과 ‘편리함’의 인과관계는 없습니다. 화장을 안해서 또는 머리를 잘라서 편리하든 말든 그게 논점이 아닌 거죠. 오히려 (해오던 대로) 긴머리가 편하고, 화장 자체를 ‘취향 존중’ 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왜’ 내가 편하다고 느끼는가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탈코르셋을 사회가 정한 여성성을 깨부수자라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방향으로 이해를 해야 하는데, 이 논점이 진행 되기도 전에 사회는 그 의미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무수히 여자vs남자 또는 여자vs여자, 페미니스트들과의 대결 구도의 논쟁을 일삼고 있죠.
단순히 꾸밈 노동, 즉 화장을 놓고 생각해보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위치, 개인의 내적 갈등, 흉악 범죄로 이어지는 여성혐오, 그 혐오를 부추기고 있는 사회와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점 등은 이제 많은 부분에서 논쟁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를 단순히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알지 못했던 일 또는 알수 없는 일이라고 해서 너무나 쉽게 얘기하고, 가스라이팅(gaslighting: 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결국 그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을 행하는 사람들이 숱없이 많습니다. 그 속에서, 바른 운동을 지지하고 진정한 ‘해방’을 향하는 길을 모색하며 ‘진정한 나’로 살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를 외치고 투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깨어난 이상, 뒤로 돌아갈 수는 없을 테니까요.
개인적인 차원에서 스스로에게 매일 물어보는 질문 중 한가지는 왜 나는 이 일을 할때 행복하다고 (좋다고) 느끼는가 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제게 씌워져 있는 사회의 많은 프레임이 내 생각회로를 어떻게 차단하고 조종하고 있는지를 거부하려는 일종의 몸부림인 셈이죠. 다르게 생각해보려 노력하고 책을 뒤져 공부하고 조언을 구하고 강의를 듣는 등 마구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다보면 조금씩 보이게 돼요. 사회가 얼마나 잘못된 여성상을 치부하고 있는지, 그로 인한 심층적, 공공적 문제들이 많이 생성되고 있는지. 그것들과 싸우는 과정을 계속해서 기록해 나갈 것이고 실수가 있더라도 고쳐나가면서 배우길 희망합니다. 더욱이 다른 여성들도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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