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에세이] 아이들과의 대화
가장 쉽고도 어렵고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그리고 조심에 조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이들과의 대화다. 그들은 스펀지처럼 내가 전달하는 모든 단어와 톤, 그들에게 비추는 태도를 한톨도 남기지 않고 흡수하며 거울처럼 그들 자신의 몸 속에 반영한다. 깊숙히 저장해둔다. 그렇기에 늘 그들을 맞이 하기 전, 텐션이 올라간 즐거운 긴장 상태로 문을 열곤 한다.
선생님이란 위치에선 장난처럼 나누는 대화 속에서도 수업을 치고 이끌어나갈만한 뚝심과 예리함을 가져야 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일 수 있어야 하는 이 어려운 일을 나는 몇년 째 이어오고 있는데, 단순한 교사로서의 직함이나 생활 때문만이 아니다. 단 한순간도 빠짐없이, 늘 그들은 내게 영감과 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난 내 학생들로부터 거의 모든 성찰과 배움을 얻는다.
하루는 문득 어디선가 들었던 영어 단어에 대하여 묻는 아이와 어떠한 대화를 나누었다. 내 자신이 굉장히 부끄러워졌던 때를 떠올릴 수 있는 대화였다. (그들의 순수하면서도 재치있는 능력이기도)
레일라 샘(그들은 마음대로 날 선생님, 샘 을 번갈아 가며 부른다), established 은 무슨 뜻이에요?
established? 인정 받는, 존경받는 등의 형용사로 쓰이지. 문장으로 예시를 한번 만들어 볼까?
음… 존경… Layla teacher is established teacher?
헉.. (당황) 선생님을 예로 들었구나.
이것 말고도 더 있는데요?
응?
선생님을 표현하는 단어들이요!
그러더니 히~ 웃고는 수업 교재를 옆으로 밀어넣고선 종이위에 단어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생각했던 것들이니? 엄청 많..네? 하니 네. 짧게 대답하고선 내게 펼쳐 보였다. 어떤 단어는 한글로, 어떤 단어는 영어로 쓰여있었다. 아이의 머리속에만 있었을 그 묶음들이 종이 위에 꺼내져 쓰여진 순간, 나는 굉장히도 부끄러워졌다. 얼핏 봐도 좋은 캐릭터 character 를 가지고 있는 단어들 뿐이였기 때문이다.
cute, brilliant, friendly, comfortable, fun, established(고새 배웠다고), interesting 등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정도다. 이런 칭찬을 받을 자격이 되는가 싶어 순간 마음속으로 몇번이나 나의 자격을 되새김질 해야만 했다. 난 똑똑하지도 친근하지도 사람을 편하게 만들지도 재밌지도 존경받을 만하지도 않는, 그저 밋밋하고 별것 없는 사람일 뿐인데. 인연이 닿아 잠시 너의 선생님이란 노릇을 하고 있을뿐인데. 이 기대치를 충족시켜줄 만한 사람이어야 할텐데, 내가. 이 많은 단어들이 나를 묘사하는 단어라니, 흥미로우면서도 동시에 두려웠다.
아이들 마다 연습 성과, 습득 속도, 성취감 등은 편차가 굉장히 크기에 성향마다 맞추어 진도를 나가야 한다. 그래서 한 아이를 맡는다는 것은 내겐 그 아이의 모든것을 파악하려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 애정을 들여야 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쉽게 맡을 수도, 쉽게 포기할 수도 없는 고된 일이다. 그리하여 이 세상 모든 선생님들은 존경스럽다는 말이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아직 한참이나 멀었지만, 그래도 아이들 기억에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 욕심만큼은 누구보다 강하다 자부한다.
수업이 끝나고 늘 칭찬을 잊지 않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니까) 수업 외 밖에서 그들과 데이트를 하며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거나, 그들의 일상 이야기를 듣는것을 즐긴다. 내 할일 조차 바쁜데 수업시간 외에 뭐하러 그렇게 까지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이들과 있으면 정말 즐겁기 때문에 노동이라 생각하지도 않고, 외려 그들이 날 귀찮아 할 것 같은 우려심이 있을 정도. (가끔 전화가 오는데 샘 뭐하세요? 심심해서요 라고 물어오는 학생들은 너무나 예뻐 마구 껴안아 주고 싶음)
아이들과의 대화는 어른들과 본질적으로 다른데, 한마디로 '나' 와 '내 주변' 일을 아무 연관없는 상대방에게 마구 쏟아놓기도 하며 직설적으로 그리고 보이고 느끼는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숨은 서브텍스트 따위는 없다. 상대방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라는 반응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 점이 너무 귀여움) 오직 그 중심은 '나' 에게만 맞춰져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 것. 가령 '선생님, 제 아는 형이 어제 계주 달리기 했는데 100m 이겼어요' 혹은 '어, 선생님 생일이 제가 아는 동생의 친구 생일과 이틀 차이나요!' 와 같은 내용의 이야기.
아이의 눈은 참 순수하면서도 사람을 꿰뚫어 보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앞에 서면 내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된다. 즉 부끄러우면서도 동시에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저 많은 단어들을 내가 감당하며 살 수 있어야 하니까 무너지지 말자는 묘한 힘이 생기기도 한다. 사실 수업도, 내 영혼이 살려고 가는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의 맑고 순수한 영혼과 대화를 하다보면 세상에 찌든 내 마음이 두둥실 떠올라 정화되는 것만 같으니까. 어찌보면 그들이 나의 스승이고, 나의 배움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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