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기다리는 삶이란 나에겐 숙명같은 것
한순간의 외로움을 참지 못해 상대방의 연민에 기대어 잠깐 채워지면 다시 돌아보지 않을 옅은 욕심을 부리던 때를 회상하고 있다. 그 욕심이란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던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던가 반성하던 어제. 한참 회상 속에 빠져 길을 걷던 중 부츠를 신은 발이 슬슬 아파왔다. 앞으로 남은 길은 2km 정도 남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문득 든 추억의 회상도, 아직 도착하지 못한 목적지도 한번 가기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 했다.
부끄럽게도 늘 기계적 중립을 취하는 태도를 보였던 나란 사람은 매사의 일을 '좋게'만 보는 참 이기적인, 어떻게 보면 순수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도처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차별과 혐오을 내가 바라보고 싶은 면만 쏙쏙 골라 사탕처럼 내가 원하는 맛만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현실 자각을 못하는 곡이 나올 수 밖에. 감성타령하는 글만 쓸 수 밖에. 깊이 반성하고 있는 부분이다.
벌써 5년 전, 얕은 호기심과 애매모호한 태도로 누군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던 지난 기억은 문득 길을 걸을 때도, 음악을 들을때도 내 머릿속에 떠올라 생각을 어지럽힌다. 지금까지도 이를 떠올릴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도 똑같은 상처를 경험했고, 또 이를 진중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부족했던 짧은 행동을 비출만한 누군가를 만났기 때문일까.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그 욕구를 채워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기대고 싶고, 두발로도 서고 싶은 이중적인 욕구를 늘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적어도 나같은 경우는 그러하다. 어떻게 보면 혈핵형이니, 별자리니, 운세니 정형화된 클리셰로 사람의 성향과 캐릭터를 평가하는 터무니 없는 주장을 듣고 있어도 가만히 있는 이유는 상대방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이 사람의 마음과 기대를 충족시켜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꽤나 재미있어 하기도. "별자리가 뭐에요? 혈핵형은 저랑 같으시네요" 하는 귀여운 시도가.
지난 밤 비가 왔다. 그리고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꿈속에서 밤새 시달렸다. 오랫동안 나에게 연락을 원했던 한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다시금 나를 취하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꿈을 꾸었다. 무의식이란 놈은 참 오랜동안이나 나를 괴롭힌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내 피부 속으로 스며들어 자꾸 밑으로 끌어내리는 악몽같은 기억들. 약도, 테라피도, 상담도 도와줄 수 없던 부분이기에 이젠 그러려니 하고, 눈을 떴을때 만큼은 현재에 감사하며 살아가려 노력하게 된다. 나만의 정신승리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늘 그래왔지만 누군가를 기다리는 삶이란, 참 힘들다. 그 그리움의 출처는 어디일지, 무엇에 의한 그리움인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마음에 품고 있는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리움 하나만큼에 대해서는 질문을 하고 싶지 않다. 캐내고 나면 드러날 내 어두운 밑바닥이 훤히 보일 것을 알기 때문일까. 그냥, 반짝이는 센느강 위를 건너면서도 잊혀지지 않는 마음속 한구석에 조용히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무언가를, 늘 추억하며 사는 것이다. 그렇게 그냥 두고만 싶다. 영감의 원천지 쯤 된다고 생각하자.
영감의 원천지라고 하니 떠오르는 최근에 만난 몇 인연이 떠오르는데 지금쯤 기록에 남겨 두고 싶은 시점이다. 어떤 사람은 보기만해도 단번에 끌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계속해서 마음이 가기도 하는데 우연히 그런 사람을 만난것이다. 우연일지 꿈일지 모르겠지만, 재밌게도 내가 가장 기피하는 공간인 SNS 에서. 하지만, 역시나 한국에 있는 사람이다. 같은 나라, 같은 도시에 있어도 인연이 없다면 이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어찌보면 신기한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 조금 공허한건 어쩔 수 없는 듯.
하지만 여러모로 배울 것이 참 많은 사람이다.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진솔한 마음 속 깊은 얘기를 꺼내 오랜시간동안 나누었다. 어떻게 그런일이 가능하지? 싶건만 아직은 낯선 타인이기 때문에 적당히 예의만을 갖추고 거리를 유지할 수 있기에 오히려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까우면 망치기 더 쉬운 것이 사람과의 관계기에 어쩌면 전화기와 전화기 사이 그 거리가 우리에게 적당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 아직 '우리' 라는 관점으로 얘기하기엔 좀 이른 친구 사이지만)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에 길을 걷다가도 피식, 웃기도 하고 조금 더 자주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있다는 사실.
친구들과 주로 통화하는 새벽, 일주일에 한번은 밤을 새곤 하는데 서로 재우려고 안달나면서도 전화를 끊지 않길 바라며 서로의 이야기들을 풀어내곤 한다. 이젠 거긴 몇시일까 시차 계산하는 눈칫밥도 어언 몇년인가. 척하면 척이지, 지금쯤은 회사에 있겠군. 밥을 먹고 있겠군. 여자친구와 놀고 있겠군. 다른 시간을 살아내고 있을 그들을 떠올리며 조용히 내 할일에 집중하는 기분도 썩 나쁘지 않다. 떠올릴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도 괜찮은 삶이란 생각을 하고 있으니.
혼자 쓰는 일기장도 아니고 공개적으로 볼 수 있는 공간에 내 생각을 주욱 풀어놓는 다는 것은, 적당한 긴장감과 논리가 필요한 일이다.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과 숨기고 싶은 마음 두가지 양상이 역시나 여기도 존재하는 것. 하긴, 내 글을 제일 많이 읽는 것은 나일테니 나에게 가장 솔직하면 되는것 아닐까. 쉽고 진솔하게 자유롭게 나의 생각을 음악이 아닌 다른 것으로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도 큰 행운이 아닐까.
다른 시간, 같은 공간을 걸었을 사람과 나를 같은 위치에 놓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과연 앞으로도 미래를 같이 그려낼 수 있을 만한 가치의 사람인가 고민하고 있다는 것. 오늘 하루 고찰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혹 케니바론 같은 곡을 써서 들려주면 좋아할까, 아니 그보다 케니바론같은 연주를 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래, 연습하자. 기승전결 연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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