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에세이] 7월 초의 기록
한국은 마른 장마라고 한다. 뜨끈 하지만 거친 소나기가 달구어진 땅 위에 내리쳐야 하지만, 전체적인 우기의 시기가 짧아져 비가 내리지 않는 상태라고. 덕분에 일산은 현재 34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다.
행복하고 쾌락적인 독서보다는 배움이 야기하는 성찰 글들을 찾아 읽곤 했던 지난 몇년을 되돌아 보고 있다. 이제는 조금은 덜 무거운 에세이세도 손이 간다. 물론 지금도 읽고 싶은 책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가끔은 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작지만 밝은 창이 나있는 나만의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주엔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에게 생각해 볼만한 훌륭한 질문을 만들어 오라는 숙제를 냈다. 훌륭한 질문의 기준은 무엇이 있을지 각자 알아서 생각해 적어오고, 그것을 탐구하는 과정 또한 기록 하라는 말을 덧붙여서. 그리고 방학동안 독후감을 쓰고 나와 교환해 읽기로 했다. 나 또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니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든 것이다.
아이들은 글을 씀으로서 세상과 소통하고 내면에 있는 자신의 생각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추어 꺼내게 된다. 매 주 A4 두장 정도의 분량의 글을 쓴다는 것은 (그것도 선생님이 읽을) 굉장한 집중과 시간을 요하는 힘든 일이기에 격주로 하는 것이 어떻겠냐 권했더니, 아이들 모두 다 에세이를 쓰는 것 만큼은 매주 꼭 해오겠단다. 글을 쓰는것이 재미있다고.
내가 멋대로 해석한 이유란, 레진 드탕벨의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 에서의 말처럼 책은 고통을 완화시키고 인생이 끝날 때까지 당사자와 함께 동행 할 것이다. 의학적 치료가 인생을 치유하기도 하지만, 책도 인생을 치유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서 무언가의 위안을 받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과 수업을 하는 도중엔 내 모든 힘을 다 쏟아서 에너지를 소진한다. 하지만 순수한 그들과의 대화에서 다시 에너지를 얻거나 활기를 띄게 되는, 육체는 피곤하지만 정신은 맑은 아이러니한 상태가 된다. 단순한 음악이나 글쓰기, 또는 교과목을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의지와 신뢰를 주고 그 에너지를 발산 하는 것이기 때문에 참 쉽지 않은 일임을 매번 느낀다.
선생으로서는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지, 내 자신한테 요새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어려움에 부딪힌 학생들을 잘 이끌어주는 과정에서의 나의 사소한 행동들은 개선 될 수 있을까? 그들의 어려움을 잘 파악하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아는 척하며 떠들지 않을 수 있을까? 늘 생각하는 부분이다. 굳이 선생님으로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는 대부분의 관계와 상황 속에서도 적용이 된다.
집 앞에 해가 질 무렵이면 늘 맥주 한캔과 함께 센느강을 벗 삼아 술을 마시는 아저씨 한 분이 계신다. 어제도, 엊그제도 그 자리에 계셨다. 그 뒤를 매일 지나치는 나는 마음속으로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오늘도 잘 지내셨어요. 어떨때는 라디오를 틀어놓기도 하고 잔잔한 보사노바를 들으며 흥얼거리기도 한다. 나는 아저씨가 오늘도 계실까, 문득 생각이 나면 창문 밖을 곁눈질 하곤 한다. 한번도 인사를 직접 건넨 적은 없지만, 그 자리에 계신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면 왠지 안심이 된달까.
요샌 쿼텟 프로젝트와 함께 새로운 베이시스트를 찾는 중이라 앞으로 몇주간은 주말에 잼세션을 돌아다니며 연주자들을 눈여겨 보아야 할 듯 하다. 그동안 준비했던 영상들도 거진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고 프로포즈 할 수 있을 시간적 여유도 생겼다. 문제는 편곡이다. 곡과 프로젝트의 방향을 고려해 편곡을 해야하기 때문에 아예 자작곡을 할지 아니면 스탠다드를 편곡해야 할지 고민이다. 물론 적당히 섞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룹의 색깔이 잘 묻어나올 수 있으려면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편곡을 하고 여러번의 합주를 거쳐야만 한다.
단순히 한 번의 공연으로 끝날 것이 아니기에, 앞으로 몇년 간은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는 든든한 동료를 구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좋은 동료를 찾는 것이 연인을 찾는 것보다 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물론 주위에 같이 연주를 할 수 있는 뮤지션들은 널려있다. 나와 하고 싶어하고 레퍼토리를 보내달라는 세션들 또한 많지만, 내가 까다로워서 인지 (그리고 몇 번 데여서 인지..) 앞으로 내 그룹으로서 함께 걸어갈 연주자는 신중히 고르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급하게 찾는다고 또는 포기한다고 해서 구해지는 것은 아니라 조급하게 찾진 않으려 한다.
참 좋은, 고마운 동료들을 다 한국에 두고 왔지만- 아직도 문자를 하며 가끔 이야기 하곤 한다. 그때 헬조선을 탈출한 너가 부럽다고. 거기서 오래오래 음악하고 살으라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 이번 여름엔 언제 오냐고 몇번이나 물어보는 츤데레 형들. 어제도 우울하다며 늦게까지 음악을 듣다 자던데... 사실 이래저래 걱정되는 부분이 많다. 많이 어리고 부족했던 나를 데리고 다양한 무대를 데리고 다니며 우리를 아꼈던 고마운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미안해서라도, 나는 여기서 뿌리를 내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인물사진을 예쁘게 찍는 방법은 그 사람이 예쁘게 나올때까지 계속 찍거나 예쁜 순간이 될 때가지 기다리는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극진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내 앞에서 카메라를 여기저기 돌리고 한 걸음 뒤로 갔다가 고민하던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고마워졌다. 잠깐의 순간이라도 그렇게 집중하며 나를 봐주었다는 사실에.
여기저기서 조각난 글들을 자주 보고 기억해놓곤 하는데 대부분 출저가 어딘지 몰라 인용하기가 조금 망설여 진다. 게다가 본 글 그대로 인용하는 지도 의문이고.. 하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좋은 글은 공유하고 싶어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을 적어본다.
지불해야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소득과 직장이 있다는 것이고 파티를 하고 나서 치워야 할게 너무 많아서 짜증이 난다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닦아야할 유리창, 고쳐야할 하수구가 있다면 그건 나에게 아늑한 집이 있다는 것이고 교회에서 뒷자리 아줌마의 엉터리 성가가 영 거슬린다면 그건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이고 온몸이 뻐근하고 피로하다면 그건 내가 오늘 하루 보람차게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다.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일궈진 불평, 불만들 바꾸어 생각해보면 또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아무리 진심을 다한다 한들 그 진심이 상대방에게 까지 닿는 것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쉽게 절망하고 쉽게 희망에 빠진다. 같이 보냈던 시간들, 나눴던 대화들은 과거속에만 희미하게 존재하며 아련한 기억을 남긴다. 이 또한 상대방에겐 다른 모양과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어렵지 않게 미련을 놓게 된다. 진심으로 걱정했던 나의 마음이 설령 닿지 않았더라도 그들을 생각하고 애정했던 나 자신을 돌보면 되는 것이다. 더이상 그들을 추억하지 말자.
며칠 전은 아버지 생신이었다. 자주 영상 통화로 얼굴을 보고 이메일로 장문의 편지를 주고 받는 부녀사이지만 그 날 만큼은 더욱 핸드폰 화면 속 아버지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이며 생신을 축하한다고 말씀 드렸다. 그러자 별거 있냐며 매일이 생일이라고 말하신다. 요새 부쩍 어깨를 토닥해주고 싶다는 둥, 안아주고 싶다는 둥의 말을 카톡으로 보내시는데.. 생전 안찍던 셀카도 찍어 보내시고. 전에 서울로 출근하실때는 종종 광화문 거리에 있는 교보문고의 글귀를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는데, 보고싶다는 말을 다양하게 표현하시던 아버지. 가족은 늘 그립다.
여름을 맞이한 집필 작업과 앨범 작업은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궁금해 할 사람들에게 자주 연락을 남기곤 하지만 그리 할 얘기가 많은지 늘 새로운 주제를 들고 나를 찾아온다. 며칠간 이어진 일들에 조금 피곤하기에 답장을 못한 사람들은 또 서운함에 메세지를 남겨 어제 저녁엔 진땀을 뺐다. 주말에 시간이 되면 보자는 연락에도 쉽사리 답할 수가 없는 이유는, 지금 오롯한 나만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인데...
이상하게 요새 자꾸 생각이 나 꺼내 읽는 예전 편지의 한구절을 적어본다.
당신이 정말 기대 되. 궁금해. 한 내가 서른이 넘고, 당신이 이십대의 후반이 되면 어떤 그림을 가지고 살고 있을지. 당신은 분명히 그때가 되면 좀 더 가치있는 아름다움을 가질겁니다. 제가 보증해요.
따스한 말을 전해주었던 오래된 인연은 그 시절 분명 내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던 게 틀림없구나 싶다. 이 외에도 깊고 다정한 말들이 빼곡히 적혀 있는 이 편지는 내 보물상자다. 그 소중한 마음을 자꾸만 돌이켜 읽게 된다. 편지의 힘이란. 글자의 힘이란. 실제로 보증을 서진 않았지만, 지금은 연락도 되지 않지만 이러한 기억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주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 이십대 후반의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잘 살고 있긴 한건가 의구심이 들지만.
엘라 펫제랄드의 콜포터 송북에 꽃혀서 요새는 글을 쓰든 스트레칭을 하든 대부분의 시간에 듣고 있다. 틀어놓고 내 일에 집중하는데 엘라의 목소리만큼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없다. 세번째 트랙인 Miss Otis Regrets (She’s Unable To Lunch Today) 을 좋아라 하는데, 원곡과는 굉장히 다른 느낌이기에 그녀의 담담하지만 따듯한 목소리로 반복해서 들으며 위안을 삼고 있다. 엘라, 그녀의 목소리로 꽉 채워질 수 있다면 한여름도 나쁘지 않구나.
When she woke up and found
That her dream of love was gone, madam
She ran to the man who had lead her so far astray
And from under her velvet gown
She drew a gun and shot her lover down, madam
Miss Otis regrets she's unable to lunch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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