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일상] 8월 20일, 달콤 씁쓸한 파리의 일상

스팀잇 7일차 뉴비로서 스팀 검색하랴, 포스팅 하랴 머릿속에 정리는 덜 되는 요즘, 가장 어렵지 않은 접근인 포스팅 주제로 일상을 기록하기로 했다.
자극을 주거나, 정보성이 있거나 재미있는 여러가지 카테고리의 컨텐츠들을 접하게 되면서 여러 생각이 드는데, 어쨌거나 많이 써보고 읽어봐야 성장할수 있다는 원칙을 따르기 위해서 노력해보자.
#1
파리에 거주한지 만 삼년째, 내 모든 주위에서의 시각들, 물체들이 내 모든 인식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흔들리고 있는 내 좁고 작은 인식들이 옳은 방향으로 깨어나지고 있는가? 에 답한다면 옳고-그름의 정의를 또다시 설립 해야만 할것같은 무한 루트 (즉 멘붕) 상태에 빠진다. 여러 곳에서 학교를 다녀본 나는 각각 나라에서 배우고 설립된 나만의 ‘정의’가 결국은 그 ‘나라’의 특색과 모양새에 따라 큰 영향을 받고 변화 한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모두의 정의를 각각 가지고 있기에 '사람은 늘 치열하게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자기 성찰을 해야한다'는 역사적인 외침이 지난 수많은 전쟁과 죽음, 운동 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사건 사고들로 이어져 오고 있음을 늘 기억해야한다.
코즈모폴리터니즘, 해체주의, 페미니즘과 같은 현대 철학적/신학적 담론들을 가르치고 있는 강남순 교수님/저자 의 글을 인용해본다.
'모든 질문이 타당성을 지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래전 서구에서는 ‘흑인에게 영혼(soul)이 있는가’ 또는 ‘여성에게 영혼이 있는가’ 라는 질문이 심각하게 논의된 적이 있었다’
-강남순
이런 서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꼭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이러한 ‘사실’들이, 그리고 시대적 또는 문화적 정황에 따라서 매우 ‘비정상적’인 일들로 간주되어온 것들이 참으로 많다는, 그 서글픈 말또한 마음속 깊이 와닿는다.
그렇다면 왜 '자기성찰'과 먼, ‘비판’ 이 아닌 ‘비난’ 을 할까?
‘공감’ 의 한계성
시선이 곧 마음이다 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내가 여태까지 공부하고 겪고 봐왔던 것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다 그 시절 그 상황속 비춰질수 밖에 없는 시선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선들은 Input 과도 연결되는데, 어떠한 Input을 가질것인지는 대부분 내가 결정하기 때문에 그 다양한 종류와 모양의 Input 들을 결정하는데는 많은 시간과 고민을 필요로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적용되는것은 아니다. 내가 원치 않는 상황에서, 굉장히 짧은 시간-또는 오랜 시간동안 나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영향을 주는 사건들이 시시때때로 생기기 때문이다.
최근의 일로 꼽자면 내 작은 인간관계 써클 속에서 만나게된 한 인연과의 일화로, 그를 A라고 치고 얘기를 계속해보겠다. 한국에서, 그 좁은 음악계에서, 그리고 더 좁은 재즈씬에서 파리로 유학을 온다는것은 이미 프랑스에 발자국을 남기고 떠난 음악인들, 또는 아직 머물고 있는 몇 사람들에게 모를수 없는 그리고 반가운 소식일 가능성이 크다.
#2
내 인생 두번째 유학을 프랑스로 결정 했을때만해도 평생 써오던 한글,영어권 나라가 아닌 유럽으로 모든걸 걸고 떠난다는것이 (누구에게는 용기있는 모험담으로 전해져 올수 있겠지만) 그저 무모한 일이었다. 막상 도착하고 나서 짐을 푼 후에도 설렘보다는 긴장, 걱정들이 앞섰던 기억이 난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그래프가 있는데, 그 많은 점들 사이 어딘가에 타지 11m2(약 3.5평)의 작은 아파트에서 느꼈던 그 막막함을 나눈다고 한다면, 나도 감히 당신에게 공감한다고 말할수 있다. 그 짠함과 막막함을 나누던, 서로의 연민에 공감해주던 A와 첫 식사를 나눈지 두달이 안된 때였다.
그는 파리에 온지 6개월이 안되는 그 짧은 사이에 11번이나 이사를 해야했고, 지금도 비가 새는 파리의 낡은 아파트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날 내가 들은 충격적이고도 안타까운-여기에 나열하진 않겠지만 그가 파리에서 겪었던 모든 인종차별,성차별,사기,배고픔 등- 여러 일들은 한참이 지난 지금에도 내 뇌리속 깊이 박혀있다. 이유인 즉슨, 그래도 괜찮아요-이제 여름이고 파리 하늘도 맑고, 페스티벌도 있으니 즐겁게 지낼수 있어요 라고 부끄러워 하던 그가 급 돌연 한국으로 귀국한다는 메세지를 보냈기 때문. 그 메세지를 읽는 내 심정은 그래도 연락을 주고 가는구나, 하는맘에 고맙기도, 동시에 착잡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파리행을 결심하고 이 땅을 밟을때 쉽게 빠지는 이 도시의 아름다움, 황홀함에 정신을 못차리고 마치 내가 파리지앵이 된것마냥 옅은 낭만감에 사로 사로잡혀 사는 경향이 많다.
그의 생활이 어떤지 단편적으로나마 직접 듣고 공감에 동참했던 사람으로서 그의 돌연적인 귀국행은 안타깝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이러한 직접,간접적인 정보의 Input 들은 나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다. 내가 받아들이는 것, 내가 보는것들이 전부 당연하고 자명하다고 생각했던 예전 시절이 있었기에 진정한 배움이란 ‘변혁적 배움 transformative learning’이다 라는 말이 지금으로선 가장 지향하는 문장이라고 할수 있겠다. 내가 이 포스팅에서 얘기한 문단들에 모두 해당되는 말인듯 하여 정리를 해보았는데 글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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