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너와 똑같은 삶을 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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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자고 돌담 위에 앉혀놓으니 울상을 짓고 있는 어린 나


 엄만 다른거 바라지 않고 너처럼 살고싶어. 불안하고 정신없는 나날 속의 청춘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지향하고 또 그를 뒷받침 해 줄수 있는 날을 살고 있다는 거. 그거 아무나 가질수 없는거야. 엄만 너가 자랑스러워. 생각해보면, 왜 엄만 너 나이때 그렇게 멋지게 살지 못했을까 싶어. 배우는것도 때가 있는데 너처럼 훅 미국을 횡단해 뉴욕에 있는 학교도 가고 유럽으로 유학도 떠나고. 무모하게 혼자 비행기도 막 타는 용기를 왜 그땐 가질 수 없었을까. 넌 재능도 있고, 성실하기 까지 하니 주위에서 그걸 알아보고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잖아. 엄마는 널 응원해. 앞으로 조금만 더 고생하자.

 60년대 후반에 2남1녀 가정에 혼자 여자로 태어나 그 시대만의 중산층도 아닌 서민층에 가까운 불안한 헤테로 삶을 살아왔던 우리 엄마. 운동권에 속했을 시기에 휩쓸리지 않고, 87년도에 제도적 민주화 이후 여러 시도가 있었던 와중 질적 민주화가 벌어졌고 그 가운데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저희 엄마가 서있었습니다. 여자였기에 대학에 갈 수 없었고, 딸이었기에 공부하지 못했던 설움과 함께요.

 한 언론 매체의 기자가 지금 시대엔 절대 올리지 못할, 여성을 대상화하고 혐오하는 글을 버젓이 올릴 수 있었던 무지가 세상에 만연히 퍼져있던 예전 시절, 오롯히 진보의 성향이 짙던 아빠를 만나 둘만의 가정을 꾸리고 저를 키워오셨고 지금에서야 제가 사유하고 집에 온갖 늘어놓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글들과 이데들을 조금씩 살펴보며 깨닫고 계신 중입니다. 본인이 겪어온 많은 부분들이 여성혐오였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도 인지하려 노력하게 된 것이죠.

 아직 페미니즘에 대해선 어려워하시고, 조금만 본인이 살아오던 방식과 달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좀 걸리지만 IMF 이후 시작되었던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자라오던 본인만의 생각은 굉장히 갇혀있었으며 편협했다는 것, 딸은 내가 자라왔던 세상과는 다른 곳에 살길 원하신다는 것, 정도는 깨달으셨답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구요)

 그런 관점에서 ‘도대체 왜 여자를 동등한 생물체로 보질 않는가’, ‘평등이란 단어는 한국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딸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들이 왜 많은지 공감하는 부모님을 보고 있자면 고마움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먹고사니즘을 타령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딸을 저 멀리 유학까지 보낸 부모님의 심정에 조금이라도 무게를 덜어드리려 더욱 깨어있으려, 나부터 바뀌려 노력하지만 소수에 대한 차별과 제 안에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는 여성혐오 등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공부하고 성찰해야 함을 느끼고 있어요.

 엄마가 다시 태어난다면 여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모든 만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에서 독립적이고 권력을 쥐고 있는 위치에 태어나길. 엄마가 하고 싶었던 사진도 계속 공부하고, 여자라고 살해당하지 않고 성추행 당하지않고 혐오당하지 않는 세상에서 오로지 ‘엄마’ 자신만 보고 살아도 되는 이기적인 삶을 살길.

 오는 11월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올 '낙태죄 처벌 대상이 여성과 의료행위자로만 한정돼 있는 것이 편파적이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자'는 주장 또한 응원합니다. ‘여성에 대한 낙인과 차별 해소와 안전한 의료 서비스를 통한 건강권 보장’ 같은 당연한 권리를 국가에서 더이상 통제할 수 없는 시대에 살 수 있기를. 엄마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이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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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도중에 엄마께서 오늘 재활 운동 하고 돌아오는 길에 발견하셨다며 보내오신 사진.
앉아서 이 클로버를 찾느라 한참을 뒤적거렸는데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뭐하세요? 를 물어보았다고. 웃으며 클로버 찾아요~ 하면 그게 보여요?? 하셨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