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음악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찰
프랑스에선 비자, 거주 문제, 학업, 생활 등 무엇 하나 쉬운게 없다. 산 넘어 산이라고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불어와 느려터진 행정은 안그래도 신경 쓸 것 많은 복잡한 삶에 방해물만 된다. 한국에서 승승장구 하는 친구들과 내 자신을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파리에서 혼자 버둥대는 내 모습이 안쓰럽게 까지 느껴졌기에 나도 처음엔 당연히 불평만 늘어놓고는 했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어 도로 짐을 싼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가다 문득 깨달은 바는, 나의 자존감이 낮아지고 우울했던 가장 큰 이유로는 나의 정체성을 ‘음악인’ 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재즈 연주로 일을 하고 돈을 번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지금 활동하는 세션맨들의 수입으로 내가 만족할 수 있을까. 내가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목표치는 어느정도인가. 만약 더이상 음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사고로 목소리를 잃어버리게 되거나,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의 중심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결국, 나의 ‘중심’이 문제인 결론에 다다랐다. 나의 부족한 점들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것과 민감함의 바란스를 맞추어 살아가는 것. 내 중심을 다른 사람의 시선도, 음악도, 그 무엇도 아닌 ‘나’에게 맞추어 지켜내는 것. 우리 모두가 생각해보아야 할 중요한 교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투정을 부리고만 싶은, 어리광을 맘껏 늘어놓고만 싶은 날이 있다. 사실 어제가 그러했는데 연속되는 레슨에 내 감정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기에 시간이 흐른 지금 차분히 앉아서 글로서 풀어내고 있다. 학생들에게서 받는 에너지로 살아가고 있다고 과언이 아닌, 흔들리고 있는 바로 지금. 소소한 일상에서 느껴지는 행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래가 존재하고 그 속의 가사가 들린다. 그 음악에 공감하고, 일어설 힘을 얻고 다시 노래해야겠지. '나' 로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은 곧 서른이 되는 나이임에도 쉽지 않은 일. 마흔이 되어도, 오십이 되어도 다를 것은 없겠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냥 오늘은 마구 투정을 부리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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