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순의 낮꿈꾸기] 이 시대의 스승…대체, 누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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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디어에서 종종 등장하는 독특한 표현이 있다. 누군가를 ‘우리 시대의 어르신’, ‘우리 시대의 스승’ 또는 ‘시대의 멘토’라고 지칭하는 표지이다. 그런데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 붙이곤 하는 이러한 표지는 복합적인 사회적 가치구조를 담고 있다. 이러한 표지는 의도와 상관없이 한국 사회가 지닌 다층적 위계주의가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노령의 학자 또는 종교의 수장으로 살았던 종교 지도자, 작가, 정치가 또는 교수 등에게 ‘우리 시대의 스승(어르신)’이라는 표제어를 사용하면서 미디어는 그들에 대한 찬사를 생산·재생산한다. 이러한 과장된 표지는 우리가 자신, 타자, 세계를 보고 해석하게 되는 ‘보기 방식’(mode of seeing)을 구성하는 데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들을 마치 당연한 것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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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이라는 이데에 대해선 깊은 고찰을 나눠왔고, 늘 'missing' 즉 갖고싶어 해왔고 늘 갈망해 왔다. 이러한 감정들을 상기시켜보자면 꽤나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나와는 같기도 또한 다르기도 한 스승의 행동, 사람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생각들을 닮아간다는 것 그리고 '반'스승의 뜻 까지, 이 모든 것들은 내가 항상 원해왔던 것이다. 너무나도 무지하고 부족한 나를 늘 일깨워주는, 멀고도 가까운 사람. 그런 사람이 존재하긴 하나? 막연히 궁금했던 부분.

 강남순 교수님의 낮꿈꾸기 칼럼에서는 이러한 바를 보다 자세히 그리고 비판적으로 풀이하고 있다. 사용자의 의도와는 다른 젠더차별·계층차별·나이차별·학력차별 등의 가치 구조를 생산·재생산하고 그 모든 산물을 끊임없이 되풀이시키고 있는 한국 사회.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앞으로도 아예 등 돌리기는 불가능한 구조로 나의 '스승'이란 의미를 더럽히고 있다.

 나또한 누군가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참 벅차다. 과연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나이가 많고 적고 남자고 여자고 직업과 전문성을 떠나 한 사람에게 깊은 영감과 깨우침을 전해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정말 '이상적'인 이야기는 내 상상속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걸까. 그래서 난 늘 내 '스승'이 되어줄 존재를 찾아 모색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부모님의 존경스러운 점, 그러나 닮고싶지는 않은 '반스승'인 점, 내가 머물고 일하는 필드의 선배와 교수님에게 배울 점, 친구 또는 동료들에게 느끼는 점, 연인에게서 깨닫는 점, 내 자신을 비추어 생각해보게 되는 내 스스로의 거울 등 삶은 늘 배움의 연속을 선사한다. 나는 조금이라도 자랐을까, 그들은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무언가 깨달았을까. 궁금증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얽히고설킨 이 현실세계의 다양한 현장들에서 그때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굉장한 ‘스승’이나 ‘어르신’이 아니라 나와 함께 걸어가며 나를 지켜봐 주는 ‘동료 인간’이 아닐까. -기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