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케미스트리
사진은 엄마가 좋아하는 Hydrangea. 지금은 떨어져 살긴 하지만 부모님과의 유대감을 생각해보면 크고 깊은 편이라고 할 수 있고, 늘 애틋함을 잊지 않는 편이다. 대학생 1학년 때부터 자취를 했고 졸업 후엔 독립을 한 후 바로 프랑스로 넘어왔으니 20대의 대부분은 떨어져 살았다고 볼 수 있는데 오롯한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닌 듯. 아직은 정신적으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어른이(어린 어른)라 그런지 시시콜콜한 일부터 그렇지 않은 일까지 다 의논하는 친근한 딸래미라 그런 걸 수도 있다.
며칠 전 있었던 일화로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보통 저녁엔 전화를 잘 걸지 않는데,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기 전 문득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몇 번이나 신호음이 가도 받지 않으시길래, 아직 주무시나 싶어 전화를 끄고 옆으로 돌아누운 후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만 네 번이다. 아뿔싸, 전화한 시각은 새벽이였는데 얼마나 기다리신걸까. 바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최근에 영화 <서치> 를 보았는데 괜히 더욱 죄송스러웠다 (영화에서 딸이 실종되는데, 실종 날 새벽에 아빠한테 세 번의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못했고, 그 후로 일어나는 미스테리한 사건들을 풀어가는 이야기)
영상통화로 잘 일어난 모습을 보시더니 어머니는 걱정과 서운함 불안함 등등 복잡해 보이는 얼굴로 별말 없이 알겠다, 하고 끊으셨다. 부스스 일어난 나는 늘 하던 모닝 루틴으로 차를 끓이고, 창문을 열었다. 스트레칭을 한 뒤 호흡, 명상. 부팅이 좀 됐을때 즈음 다시 핸드폰을 켜고 전화를 했다.
역시나 별말 없으셨던 것은 밤새 걱정했던 딸이 무사한 것을 보고 순간 안심했던 것. 바로 잠들어 버렸고, 핸드폰이 취침 모드로 설정되어 전화가 울리지 않았다는 허접하고 죄송한 변명을 어머니는 가만히 듣고만 계셨다. 어머니와의 케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걱정한 시간 만큼 버럭 화풀이를 할수도 있었지만 대신 이 아이는 어떤 마음으로 그 새벽에 전화했을까, 앞서 넓은 마음으로 생각하고 배려 해주시는 것. 물론, 후에 너는 해외에 혼자 있는 애가 밤에 전화 한번 딱 하고 엄마가 바로 걸었는데 받지도 않고 무슨 일이 있는건가 걱정을 을매나 했는지 아냐 잔소리를 한껏 들어야 했지만. 누가 보면 별일 아니라고 느낄 수 있는 일이지만 늘 떨어져 있어 전화로만 생사를 확인하는 가족인 경우는 좀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
평소 직관적이고 배려심 많은 캐릭터인 어머니는 무언가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 내가 깨닫기를 늘 기다려 주시는 넓은 마음을 갖고 계신데 철없는 나는 아직도 유리 멘탈이고 작은 것에 투정을 일삼는다. 이런 딸이라도 늘 자랑스럽다고 얘기해주는 고슴도치 부모님이 있는 나는 행운아임을 가끔 망각하곤 한다. 물론 부모님이 두분 다 계시는 소중함은 잘 알지만 바쁠땐 가끔 연락을 못할때도 있고, 원치 않게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있다. 부모님과는 평생 끊을 수 없는 인연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내 편이 돼줄 든든한 원앤-온리 지지자라는 것.
가족은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사이이며 가장 존중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현재 가족-친지들은 한국, 미국, 유럽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한 곳에 모두 모이는 타이밍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어디에 있든 건강하기만 하다면 그걸로 감사한 일이지만. 지금 여기엔 나에겐 또 다른 제2의 가족이 있다. 늘 한데 모여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아플때 챙겨주는 가족과 다름 없는 사람들. 어디를 갔다 돌아오든 늘 환영해 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한국을 다시 가는 얼마 남지 않은 시점임을 계절과 불어오는 바람을 통해 느끼는 중이다. 갈 날이 한참 남았는데 벌써 언제오냐고 몇번씩 물어보는 친구들은 이번 겨울은 더욱 추울 테니 두터운 옷 챙겨 오라며 잔소리를 해댄다. 그래도 더운 여름에 가는 것보단 낫지 않으냐고 하니 다들 즉각 수긍을... 이번 여름이 덥긴 더웠으니까. 그나저나 마트에는 슬슬 귤이 나오는 시기다. 아직 맛이 들었을것 같진 않지만 내일은 한바구니 사서 먹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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