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온도] # 3 - 나를 성장시켜준 한 사람 Ivy / Mabel


남자들은 대체 왜그럴까


 -란 일반화 시키는 오류를 감히 범하게 해줬던 사람이 있다. 사랑도 여러 형태를 띈다. 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걸로 느껴지는데, 많지는 않지만 든든하고 오래가는 따듯한 사랑, 그리고 불같이 활활 타오르는 재조차 남기지 않는 소모적인 사랑이 내가 경험했던 두가지 타입이다. 이 글에선 후자, 곧 엄청난 표현과 쏟아 부어주는 관심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뜨거웠던 사랑을 떠올리고 있다.

 내가 빠질 수 밖에 없었던 모든 조건을 다 갖췄던 사람이었기에 지금 돌이켜보면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또 한번 만났을거라는 위험한 생각이 든다. 그는 대단했다. 여러모로. 첫 만남부터 어떻게 해서 만나게 되었는지는 내 머리속에만 있어도 충분하니 생략하고, 나를 '성장' 시켜준 그 부분에 대해서 일괄 정리를 해보자.

 여러모로 대단했다는 의미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던 사람이었기에 대단했다는 뜻도 포함되어있다. 물론 순전히 내 기억에만 100%의지해 풀어내는 기억이니 그 사람 입장에선 분명 다를 테지만, 뭐. 20대 딱 중반을 찍었을, 이제 막 시작한 사회생활과 여러 부담감을 느끼던 어린 나를 붙들고 그는 어디까지의 미래를 생각했던 걸까.

 편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마음을 편지로 전해받았다. 평소 눈치가 빠른 편이라 자부했던 나는 그가 마구 던지던 신호들을 정말 단 1도 몰랐기에 당황스러웠던 마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사실 그 편지는 아직까지 갖고 있음. 스팀잇에 글을 시리즈로 올리는 것처럼, 그는 나에게 시리즈로, 색깔만 다른 같은 편지지에 마음을 적어 주었다. 그 편지 한장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버린 편지만 수두룩 하다고 했다. 그 정성에 어떻게 감동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You can't keep your feet on the ground
넌 땅에 서있기 힘들겠지
Your head's in the sky, just so you can look down
넌 하늘에 있어, 내려다보고 있어
But you never notice and I keep on hoping
그러나 넌 결코 눈치 채지 못할 거야



회상, 속죄


 그도 그랬을 수 있다는 짐작을 여기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대체 여자들은 왜그럴까, 싶었을 것. 그가 쏟아 부어주는 관심과 소유욕과 감정의 표현들을 난 순간 '사랑' 이니까, 그래도 되는 것인 줄 착각했었다. 나를 옭아매는 사사건건의 밀당과 그의 생각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비탄 받아야 했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억압들. 이것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난 지금 사랑받으니까. 조금 힘들지만 괜찮아.

 제대로 지속할 수 없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내 자신도, 그도 똑바로 챙기지 못했다.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데 어찌 연애가 잘 굴러가겠는가. 오래가지 않아 활활 타오르던 좋기만 한 시간은 슬슬 꺼져가고 삐걱대기 시작한 이 관계의 끝을 난 미리 짐작했다. 너가 생각하던 연애에 내가 따라주지 않자 제 풀에 지친 모습의 그를 보고 있자니 안쓰러웠던 나는 길지 않았던 그와의 '현재'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 너는 '추억'이 되겠구나.

 여기서 뒷북 포인트 하나. 술을 먹고 전화를 했더랜다. 아, 물론 내가. 다 타버리고 남은 잿더미 위에 앉아 계속해서 그때로 돌아가곤 했다. 왜, 지나가고 나면 힘들었던 것도 별거 아니었고 좋았던 기억만 남지 않는가. 내 손에 움켜쥐지 못했던 우리의 관계가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기 때문이였을지는 몰라도, 술먹고 에라이 목소리라도 들어보자 라는 심정으로 미친척(?)을 감행했다. 물론 결과는 처참했고, 내 자신에게도 좋은 결정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지만.

 고마운 사람이다. 내가 여태껏 받아보지 못했던 연속적인 감정을 안겨주었고 전에는 해보지 못한 일들을 감행하게 하는 대담함을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아직도 그만의 세계에서 수영하며 잘 살고 있을 그는 굳이 찾아보진 않았지만 그럴거라 확신한다. 그래서 보고싶어도 참을 수 있다. 잘 살고 있을텐데 뭐. 매년 오던 생일 축하 메세지에 답장도 하지 않았다.


A half way moment we live
우리가 사는 순간
I can't forget by can always forgive
나는 항상 용서할 수 있음을 잊곤 해
You need to tell me
내게 말해줘
Why can't I just say?
왜 난 말할 수 없는지
Why can't we just be?
왜 우리는 그럴 수 없는지



 내가 빠질 수 밖에 없었던 모든 조건을 다 갖췄던 사람. 그리고 나를 이해하려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안타까운 사람. 한창 일을 시작하던 내가 가장 바빴던 시기에 만나 시간이 많이 부족했고 정말 애타게 사랑했던 사람. 이젠 보내려 한다. 사실 진작 예전에 내 마음에서 떠나 보냈지만, 책을 쓰면서 두번째로 자주 떠올렸던 사람이었기에 탈고를 한 시점에서 정리를 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대체 남자들은 왜 그럴까, 가 아닌 그때 너는 왜 그랬을까, 였어야 했는데. 그때의 너를 이해하지 못한 나도 참 미안하고 부족한 사람이었기에 이렇게나마 마음의 짐을 덜고 있다.



And we grow, yeah, we grow
우린 그렇게 성장하지




[연애의 온도] # 1 - 만약에 If Only / Raveena
[연애의 온도] # 2 - 쉽게 마음 주는 사람 I'm Not An Easy Lover / Jaz K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