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팥죽의 행복

친한 형과 만나서 점심부터 회를 먹느니 그 전에 뱃속을 좀 달랠것을 찾느니 옥신각신 하던 도중, 눈에 띄는 팥죽 카페에 손을 끌고 들어갔습니다. 물론 빙수와 떡 등도 판매하는 곳이였지만 제 눈에는 팥죽만 보였어요. 오랜시간 끓이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음식이기에 파리에서 먹기 쉽지 않거든요.
나 혼자 많이 먹으라고 배려해주는 척 하면서 뒷짐지고 있던 형은 기어코 숟가락을 집어 들어 한 두입 먹고선 응, 팥죽 맛이네. 합니다. 단걸 안좋아해요. 그 모습이 참 좋아서 연신 웃으며 맛있다 행복하다를 남발하며 죽을 떠 먹었어요. 달큰하고 따듯한, 온 몸이 좋은 기운이 퍼지는 맛. 따스로운 햇살이 카페 안으로 들어오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한참 먹다가 고개를 들어 벽을 둘러보니 붙어있는 재즈 CD 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와, 이거 옛날에 참 많이 들었는데. 이 CD 도 있네. 팥죽집에 재즈라니 참 멋진 조합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형과 옛날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득 떠오른 다른 형. 셋이 자주 만났었고 같이 밴드도 하고 친하게 지냈었는데 파리에 가면서 그 형과는 연락이 흐지부지 되었던게 기억이 나서 말을 꺼냈어요. 전화해볼까? 지금 뭐하고 지낸대? 뭐라 대답을 듣기 전, 재빠른 손과 거침없는 행동력으로 이미 카톡 비디오톡을 눌렀습니다. 한국 온김에 얼굴이나 보지뭐. 바쁘면 안받겠지, 싶어서요. 4-5번 신호가 가고, 형이 에이 안받네 끊자- 하는 때 딱 전화가 받아졌어요. 화면을 꽉 메우는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뭐야, 이게 누구야! 왜 나빼고 둘이 만나?”
얼굴을 보자마자 웃으며 마치 어제 본 것 마냥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는 형. 뭐긴 보고싶어서 전화했지. 어떻게 지내는거야 연락도 없고. 그동안의 감감 무소식이였던 제가 무안해져 오히려 형을 타박했습니다. 파리 언제돌아가? 가기 전에 한번 보자. 서울 올라갈게. 하는 말에 코끝이 찡 해집니다. 한참 수다를 떨고 전화기를 끊은 후 마주보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아니 마지막으로 본지가 몇년 전인데, 어떻게 자기빼고 둘이 만나냐고 할수가 있는거야. 웃긴다.
이래서 한번 만났던 인연은 잊어버릴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이어진 빨간 실에 살짝 기대를 걸어봅니다. 그동안 나는 잘 지냈다고, 우리 사느라 바빠서 그동안 연락도 못하고 지냈지 않냐고. 꼭 만나서 우리 연주나 한번 하자고. 그도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 언제 연락해도 되는 고마운 사람들을 잊고 나는 지금까지 외롭다 생각하고 살아왔다는 것. 참 그리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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