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이맘때 함께 추억하는 방법
종종 책 선물을 받곤 한다. 한국책도 받지만 원서도 종종 받고, 책을 출간하기 전 마지막으로 읽어봐 달라는 부탁도 받는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여서가 아니고, 최소한 작가의 가치관을 십분 이해하려 노력하고 감안하며 책을 읽고 건네줄 것임을 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태까지 살아오며 얼마나 많은 책을 선물했을까 ?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그 책들을 고르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많지는 않은 특별한 경험이다. 내가 읽고 경험한 한 저자의 세계를 공유하는 행위는 상대방에게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을래야 않을 수야 없는 것. 그만큼 소중한 사람에게 책을 선물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문맥에서 여태까지 나에게 책을 선물한 사람들을 추억해 보았다.
파리에 전부 가져가진 못하고 한국 집의 내 방에 고요히 남겨져 있는 책들. 그 책들을 이번에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낮은 책장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하나씩 책 머리맡을 쓸어가면서 가만히 그들을 떠올렸다. 부모님, 은사님, 친구, 연인들... 또는 내가 전해주려고 샀지만 결국 건네주지 못해 내 책장으로 돌아오게 된 책들까지, 각자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서로의 자리를 지키며 서있던 모습들을 보며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그 책들을 하나씩 펼쳐보았다. 그리고...그들이 나에게 전해주기 전 적어놓은 말 한마디가 맨 첫 장에 눈에 띄었다. 다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기대를 가지고 나에게 이 책을 선물했던 걸까.
당시 그 책들을 받았을때는 이런 생각들을 하지 못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선물한걸까...왜 나에게 이 책을 주었을까. 그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마음이 들었던 걸까. 생각해보면 나는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할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것들과 깨달음을 공감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던것 같다. 이제와서 이런 생각을 왜 하냐 묻는다면 나만의 추억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마디로 궁상이라고 할 수 도 있고. 여튼 연말이 되면 마음이 깊게 가라앉기만 해서 큰일이다. 책 하나만 봐도, 편지 하나만 봐도 눈물이 날것만 같고 나만 세상 혼자 떨어져 사는 것 같은 외로움도 들고. 내 방은 이래서 자주 들어가지 않는 편이 낫다. 온갖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추억거리들이 쌓여있는 위험한 곳이라서.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아잔 브라흐마의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선물 받고 나서 일주일만에 실수로 책 커버에 물을 흘려 살짝 젖었었는데 속상한 마음에 왈칵 울기도 했더랜다. 그만큼 소중한 기억이 담긴 책이다. 세상에서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은 단 한 권이다. 그것은 바로 '마음'이라는 책이다. 영혼의 안내서라는 이 책은 사실 읽고 감상평을 편지에 써서 주려고 했으나 왠지 유치한 말들만 적어내려갈것만 같아서 마음에 새기는 걸로 묻어두었는데, 결국 건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와 그의 삶은 조금이라도 바뀌었을까 하는 망상에 젖기도...
요즈음,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라는 말이 가끔 이럴때 통하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없이 흔들렸고 불안했던 시간속에 만나 불같이 타올랐던 감정들이 책에 꽂힌 편지 한통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비록 그 마음이 이어지진 못했더라도 그 시간들이 존재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그가 있을 수 있으니까. 그 마음은 진심이었음을 알기에, 이 책도 이 책을 건네준 사람도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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