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그장면] #1 Atonement | 속죄와 편지 그리고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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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장면의 잔상이 진하게 남아있는 한 영화를 떠올리고 있다. 영화 어톤먼트(속죄)는 이완 맥완의 소설로, 1930년대에 시작된 범죄와 그 결과를 60년 동안 기록한 영화이다. 베스트 신으로는 로비(제임스 맥아보이)가 경찰에게 잡혀가는 날 시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가 입고 있던 짙은 초록색 드레스, 그리고 망연자실한 그와 그녀의 표정과 마지막 키스. 주로 배우의 의상, 표정, 분위기, 감정 복선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음악이 가장 진한 여운을 남기는데, 조 롸이트 감독의 오만과 편견 사운드 트랙 콜라보레이션 팀의 두 번째 작품으로 대표곡의 날카로운 리듬이 영화의 몰입도와 긴장을 더 하는 재미까지…결말을 알고 다시 봤을땐 정사신에 눈물을 흘렸을 정도이다. 영화의 제목이 왜 '속죄' 인지는 영화를 끝가지 다 보면 알 수 있다.

     타자기를 치는 소리와 절묘하게 떨어지는 영화 구간. 로비가 다급하게 “Briony!!!!!!!!!!!” 를 외치는 장면이 떠오른다. 브라이오니가 달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숨을 멈추고 봐야 한다. 후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이 편지 하나로 시작되기에 이 전까지의 알 수 없는 평화와 긴장감은 배가 되는데….

     프랑스 타이틀로는 reviens-moi, 내게로 돌아와요 라는 뜻을 갖고 있다. 영화 후반에 시실리아가 로비에게 인제 그만 내게 돌아오라고 말하며 그의 얼굴을 감싸는 장면이 있는데, 시실리아의 이 아련한 한마디, Come back to me 가 짓지 않은 죗값을 치르며 희생 하는 그의 삶을 이제는 놓아주라고 말해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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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아노 운율이 반복되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배경에 늘 존재한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중요한 심볼중 하나인 꽃병을 시실리아가 들고 방에 가져가며 그녀의 감정선을 극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끝에 피아노 줄을 가볍게 튕기면서 그녀의 마음에 불길이 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로비에게로 가는 시실리아와 그 후에 일어나는 일들을 목격하며 오해를 사는 브라이오니. 서막은 이때부터였을까. 이 사소한 오해는 비극적인 결말의 씨앗이기도 하다.

    여러 감정의 복선이 깔려있는지라 몇 번을 돌려본 장면인데, 로비가 의사가 되려 떠나려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세실리아는 이를 알게 되고, 그를 향한 마음을 (본인만) 모르고 괜히 심술을 부리며 연구원이나 되지 뭐하러 6년동안 학생노릇을 자진하냐며 쌀쌀맞게 대한다. 로비가 걸음을 멈추고 너희 아버지께 빚은 갚을 거야. 라고 걱정을 덜어주는 의도의 말을 하자 시실리아는 순간 얼어붙는다. 속상함과 서운함으로 뒤덮은 얼굴로 그건 내가 말하려던 게 아냐, 라고 말하며 뒤돌아 버리는 그 순간. 서로 사랑하고 있는지 모르는 두 젊은 영혼들 사이에 굉장히 복잡하고 많은 감정이 오가고 있는 것이겠지. 이후, 로비의 한쪽 손에 멋쩍게 들려진 화병 손잡이의 잔상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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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영화에서 중요한 키워드인 ‘편지’가 등장하는 신으로, 로비가 집에서 시실리아에게 건네줄 편지를 적는 장면. 그의 마음을 대변해줄 말을 적지 못해 연신 담배를 피우고, LP를 수차례 바꿔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겨우 용기 내 쓴 편지는 결국 그녀에게 닿지 못한다. 하지만 창문 사이 그의 곱슬한 갈색 머리와 잘생긴 이마와 턱선에 햇살이 비치면서 이 영화의 핵심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게 되는데…. 꿈을 꾸는 듯, 마치 그녀가 그를 어루만지는 듯 고심의 절정을 행복하게 이뤄내는 그의 모습이 이 영화의 7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랑에 빠진 젊은이의 대표적인 초화상 같기도 하고...

Atonement Letter #1 :
"You'd be forgiven for thinking me mad - wandering into your house barefoot, or snapping your antique vase. The truth is, I feel rather light-headed and foolish in your presence, Cee, and I don't think I can blame the heat. Will you forgive me? Robbie."

     수많은 영화 속, 한 사람만을 기리며 평생 마음에 품고 사는 지고지순한 캐릭터들에게 닥치는 일말의 시련들에 이상하게도 끌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공감이랄까, 몰입이 깊다고 해야 하나.. 나와 닮지 않은 면을 갖고 있어 그런가 싶기도. 이런 캐릭터들의 운명적인 스토리 텔링에 영상미, 분위기, 색감 그리고 음악까지 끼얹은 멋진 영화이기에 언제나 손이 가는 고전 중에 속한다. 속죄라는 영화 제목처럼, 나에게도 속죄하고픈 이별의 아픔이 있는건지.. 시간을 돌릴수만 있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하는 로비같은 사랑이 영화가 아닌 현실에 존재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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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nement letter #2 :
"Dearest Cecilia, the story can resume. The one I had been planning on that evening walk. I can become again the man who once crossed the surrey park at dusk, in my best suit, swaggering on the promise of life. The man who, with the clarity of passion, made love to you in the library. The story can resume. I will return. Find you, love you, marry you, and live without sh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