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록] 09062019 오랜만의 일기

IMG_4886.jpg



 파리에 산다면, 필시 한달에 한 번 정도는 지인 또는 먼 친척에게로부터 연락이 온다. 바로 며칠 신세를 질 수 있겠냐는 부탁인데, 파리의 비싼 월세와 불편한 에어비엔비 또는 민박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큰 문제 없이는 흔쾌히 수락하는 편이다. 어제는 하루동안 파리를 방문한 아는 동생이 신세를 지고 간 날이었다. 전 날 자고 갈 수도 있다는 (당일 확정이 되었기에) 이야기를 듣고 부랴부랴 집청소를 하기 시작했으나 (해도 티가 안나고 안하면 큰일나는 청소란) 살림이 워낙 소박한지라 악기와 뒤엉킨 케이블 선이 가득한 집은 사실 초대하고도 조금은 민망한 수준이었다.


 집에 도착한 그녀에게 이불을 건네 주고 책상에 앉았는데, 근본없는 페미니즘이란 책이 책장에 꽃혀있는 것을 본 그녀가 말했다. 어! 페미니즘 책이 있네요! 내 책장 속에선 페미니즘 관련 책이 주를 이루기에 몇 안되는 한국어 책 사이에서 눈에 띄던 단어였을 것이다. 스터디를 하고 있다던 그녀는 책을 더 자주 접하고 싶은데 한국책은 구하기 힘들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이북을 백퍼센트 활용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크레마를 추천해주면서 한국책을 읽고 싶다고 했지만 아마존의 킨들을 생각하고 있다던 그녀에게 자신에게 필요한 책이 어떠한 책인지 본질부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동시에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란 물음이 뜬금없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1년 넘게 아마존 킨들 페이퍼화이트를 사용해보기도, 수십건의 한국 이북 사용리뷰를 찾아보고 읽어본 후 구매했으니) 내린 나의 결정이 결국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는 결론에 다다랐을때, 그러한 경험을 필요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는 사람. 그것이 나에게는 충분한 시간동안 실용성을 따질 만한 것이었기에 상대에게는 그만한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을 줄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그것이 설령 오지랖으로 비춰질지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추천하는 편인 (사실은 오지랖이 맞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 도움이 되었다고 해서 당신에게도 같을거란 가정은 금물이여요, 라는 말 까진 덧붙이진 않는다. 어디까지나 나는 나이고 당신은 당신이니까 말이다. 이러한 당연한 사실을 상대방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것이란 기대와 함께 깊은 애정을 품는다. 하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내가 갖고있는 나의 패들을 모두 보여주는데는 거리낌이 없을것이란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내가 끊임없이 갈구하는 배움은 항상 예상치 못한 도처에서 날아들고 때론 사람에게, 경험에게 또는 사물에게서 얻기도 하는 것이기에 내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져가세요 하는 정도의 넓고도 (얕은) 마음이랄까.


  ‘사람’ 자체가 삶이고 예술이다. 생각은 말이되고, 말은 행동이 되며 행동은 습관이, 습관은 인격이 된다. 나의 인격은 언제까지나 아름답기를 바라는 부끄럽고도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누군들 안그러하겠나. 그를 갈등하고 갈망하는 모습과 재취 마저 마음껏 사람들에게 날아가 닿기를 바라며 산다. 갑작스럽고도 짧았던 그녀의 방문으로 나는 다시금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큰 의미를 두지는 않지만, 역시 사랑을 품는 것 만큼 후회가 없는 행동이란 또 없다는 것을 깨달은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책얘기로 돌아오자면 요새 읽고 있는 책은 클래식이다. 스무살때 읽었던 ‘지상의 양식’, ‘뒤엉킨 삶, 헤르만 헤세 전집 등 다시금 한참 고전에 빠져있다. 손이 닿는 페미니즘 관련 책 중 원어가 영어로 되있는 책은 다 읽었으나 한국어로 출판 된 책은 많이 접하지 못했기에 요새 이북으로 몇권 사기도 했는데 시험이 코 앞이라 ‘공부’의 색이 짙은 책은 당장은 손이 덜 간다. 음악 또한 반강제(?) 로 시험 주 곡인 스윙만을 귀에 내리 꽂고 듣고있는 중. 사실, 그 어느때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늘 정신없이 굴러가던 레슨도 어느새 균형을 맞춰가고 있고 부지런만 떨면 아침에 카페로 출근해 에스프레소 한잔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지는 정도니까.


  내가 요새 자주 듣는, 크레바스에서 올라와야 한다는 조언으로 아슬아슬 줄다리기를 하는 듯한 생활을 자각하게 된 후 신기하게도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하던 두려움과 우울함이 많이 옅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게 그러한 조언을 아낌없이 주는 그 상대로부터 느낄 수 있던 애정에서부터 치유가 된것은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그토록 귀찮고 힘들었던 글쓰기도 다시 집중하여 즐겁게 행할 수 있게 되었고 얼마 남지 않은 시험기간 동안의 컨디션도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흘러가는 시간을 기록하고 조금 더 기운을 내 6월을 붙잡기를. (그리고 시험을 통과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