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록] 08092018
곡을 만들어내야 하는 그 시점이 오면 이전의 일상에서 나를 온전히 분리시켜야 한다. 선생님 또는 학생, 딸 또는 친구나 이웃인 ‘나’를 분리시켜 이 시간과 공간에 가능한면 ‘전부’ 몰입해야 하는 것. 그 속에서 온전한 ‘나’를 만나기도 하고, 끝날것 같지 않은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여기서 어느정도의 만족스런 결과가 나오는 경우에는 대부분 일정량의 아웃풋을 창출해 낼 때인데 문제는 이 아웃풋이 내가 지금 의도했던 방향대로 온전히 흘러나와 쓸만한 형태로 굳어졌냐는 것이다. 물론 의도치 않은 경우에도 충분히 새로운 결과가 나올수 있지만 내가 애초에 기대했던 방향이나 의도와 다른 결과물을 보고 있자면 왠지 찝찝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수많은 찝찝함을 뒤로하고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같은’ 공간이지만 또‘다른’ 나를 마주할때 작업은 비로소 끝난다.
책을 집고 읽기 시작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카페에 앉아 나와는 상관없는 여러가지 주파수들이 난무하는 곳에서 온전히 내 일에만 집중하기는 쉽지않듯이 여러가지 잡생각들이 방해하는 요즘 같은 때에 이 책에 내 모든 집중력을 쏟아 부어 눈으로만이 아닌 머리와 마음으로 함께 읽기란 참으로 힘들다. 내게 책 읽기란 언제나 나 자신만의 홀로의 내면적 여행이기 때문에 그 여행에 푹 빠졌다가 온전히 걸어 나오기도 쉽지 않은것. 그럴때 새로운 장르의 책을 집어 드는건 일찌감치 포기하고 늘상 예전에 읽었던, 결국 읽기 쉬운 책으로 향한다.
듣지 않던 시험적인 장르의 앨범이나 인기 있는 대중적인 앨범이라고 해서 호기심에 들어 보다가 나중에는 결국 내 플레이리스트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일까. 아니면, 요새스팀잇에서 자주 보이는 같은 책을 읽고 얘기하는 장에 참여나 해볼까. 일주일에 한권 읽기 운동도 참 좋은 취지로 보인다. 불어 서적을 매주 한권씩 읽는 도전을 하는것도 나쁘지 않...
’홀로’ 떠나는 것 같은 내면적 여행으로서의 ‘읽기’란, 사실상 나의 삶의 여정에서 조우했던, 그리고 앞으로 조우할 무수한 이들과의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함께 존재함’의 몸짓이라는것. 결국 모든 ‘읽기’란 ‘함께 존재함’의 의미를 체현하기위한 거라는 것.
‘공간’ 이라는 텍스트를 최근에야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살고있는 이도시는 어떤 공간인가. 한 도시는 수천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는데, 나는 어떤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것일까. 일단 여행 잡지나 페이스북 또는 여행에 미치다 페이지에서 보여주는 도시의 이미지들을 지우는 작업 ‘unlearning, delearning’을 해야 할듯 하다. 복합적인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정형화하고 단일화하고 총체화하고 낭만화하는 그 일편적인 이미지를 지우고 참된 이 도시의 ‘얼굴’을 어떻게 하면 마주할 수 있을까.
내가 파리로 간다고 주위에 얘기했을때만 해도 대부분 낭만적인 도시에 가니 좋겠다, 매일 바게트 꽂힌 자전거 타고 여유롭게 사는삶 멋진데 라고들 했었다. 지금도 파리에 살고 있다고 얘기하면 대부분 부럽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하지만 모두가 이야기 하는 그런 ‘낭만적인’ 곳은 과연 존재할까. 그 정체 불명하고 모호한 단어에 가려져 있고 왜곡되어져있는 진정한 장소와 공간의 모습을 비로소 이제는 마주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도시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얼굴과 그들 삶의 이면을 전부 보고 이해하는건 불가능 하겠지만. 어디든, 누구에게든 있는 ‘어두운 이면’을 보지않으려는 성향을 이제는 최소한 나 스스로에게는 가릴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낭만적으로만 이해된 공간의 밝은 면뿐 아니라 어두운 면까지 볼수 있게 되고 나서야 조금이나마 파리에 대한 낭만적인 미련이 사라졌다. 사실 없어진지는 오래지만, 글을 쓰며 노트를 정리하다보니 확실해 진듯. 그저 여기서 내가 할수 있는 일을 찾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뿐.
동일한도시에 갔다고 해서 그곳에 가는사람들이 동일한 것을보는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똑같은 책을 읽었어도 사람들이 각기다른 개념과 의미를 찾아내는 것과 같다. 우리 각자가 지닌 ‘사물을 보는 시선’에 따라서 우리는 각기다른 것들을보며,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배움에 관하여⟫, 강남순
늘 가지고 있었던 물음, ‘나는 누구인가’ 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의미 창출과 사람, 공간, 책 속에서 내가 보는 것들. 또는 누가, 무엇이 보이는가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하루에도 수십번 바뀌는 나의 사물에 대한 궁금증과 인식은 과연어디까지 이해해야 하고 어느 깊이까지 들어가야 할까. 이러한 생각을 몇년전에만 하고 있었어도 지금의 나와는 훨씬 다른 나로 성장해있었을거라고 확신하는데, 아쉽게도 그 시절의 나는 이런 물음과는 훨씬 먼 문제들로 씨름하며 살기도 바빴다.
내 옆엔 어떻게 그런 현명한 사람들만 모여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았는데 사실 아직도 연락하면 닿을 거리지만 지금 가장 먼 마음적 거리가 있는 사람이 몇 있다. 내가 연락을 하면 무언가 바뀔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은 아예 버리진 못하고 접어 내 마음속 고이 깊이 간직하고 있다. 인연이라면 언젠간 다시 만나겠지 하는 쿨함따위는 없지만, 지금 현재를 살아내기도 버거운 나는 용기가 없다고 하는 쪽이 맞겠다. 그래서 난 늘 기다리는 쪽이다. 언젠간 다시, 내 삶에 조용히 노크를 해주진 않을까. 그럼 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반갑게 맞이해 줄텐데 라는 망상을 하곤한다. 왜, 어른들은 한번 만나봐도 이 사람은 놓치면 안되는 사람임을 알아채리곤 하지않나. 현명하신 우리 어머니도 가끔은 아쉬웠다고 안주 삼아 슬쩍 얘기를 꺼내는 나의 지나간 인연들, 그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작업중에 잠깐 쉬면서 쓰던 글이 과거 회상으로 끝나버렸다..인천퀴어축제에 관한 보도들을 읽으면서 하루종일 기분이 참담하다. 반대하는 세력이란 그들은 어떻게 '동성애로부터 회복' 이란 말을 저리 당당하게 내뱉을 수 있는지. 그 몸짓과 생각조차 '차별'이며, 또 한 사람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됨을 진정 모르는건지..머리가 아플지경이다. 작업이 끝나면 스트레칭을 좀 하고 집 밖을 걸을 생각이다. 하루종일 녹음하다가 저녁 때를 놓쳤는데... 냉장고엔 계란과 멜론밖엔 없다. 맛있는 집밥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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