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단편 생각 조각들 -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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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이렇게 살이 빠졌냐는 물음을 종종 받았다. 최근에 여러 일들이 겹침으로 인해서 수면시간이 더욱 줄어들었고 때문에 입맛이 없어져서인지 좀 더 수척해진듯 하다. 주위엔 갱년기라는 언니 오빠들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나. 우울증은 작년과 비교해 부쩍 나아진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감사하게도) 자꾸만 무력함에 빠지고, 손에 쥐고 있는 프로젝트들 외에는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힐링이 심히 필요한 시점인 듯.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세미나와 약속이 연달아 있던 드문 날이었기에 틈틈히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 애써야만 했다. 3월도 벌써 중순에 접어들면서 슬슬 여러 일들의 연속이 점점 잦아지고 있기에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 벌써 올해 하반기까지 예정된 일정이 꽉 차있는 상태다. 굉장히 바쁜 것 같지만 방학 외에는 매여있는 처지라 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뿐, 사실 평소엔 굉장히 여유로운 편.

 파리에 정착한 지 여러해가 지나가고 있지만 아직도 힘든 부분을 꼽으라면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다. 아무래도 내 20대의 반을 보낸 한국에서의 기억들이 참 오랫동안 발목을 붙잡고 있으니. 솔직하게 서술하자면 그렇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현재와 미래에 미치는 좋은 영향을 따져보자면 물론 많겠지만 가장 치명적으로 안좋은 점을 꼽자면 역시나, 그리움.

 늘 레일라 너는 언젠간 외국에 나갈 줄 알았어, 너한테 한국은 좁아 이러한 말들을 숱하게 들어왔지만 나라고 외국에서 모든걸 잊고 기쁘게 생활을 하고 지내는 것만은 아니다. 학업도 생활도 이만하면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고 외의 일들도 문제없이 해내는 편이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작곡을 할때나 글을 쓸때면 늘 그리움에 대한 주제가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데 가장 본성에 가까운 바닥의 감정이기에 창작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자주 파리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뭘 하고 지내는지 라이브(인스타)나 페이스북으로 근황을 전해달라는 요청을 받음. 이는 어렵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생활을 불특정 다수에게 오픈하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처음엔 아닐지라도 타인으로부터의 나에 대한 일시적인 관심이 결국 내 생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이미 여러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중심이 마구 흔들리는 부족한 내 자신을 알기에, 옅은 호기심은 애초부터 차단하는 것으로 나를 지키는 방법을 택한다.

 최근, 저번 학교에서 만나 친해진 동료 중 기타리스트와 다시 연락이 닿았다. 카페겸 레스토랑에 호스트로 공연을 열고 있는 그는 다시금 나와 연락이 닿음에 기뻐했고 기꺼이 그의 공연에 초대해주었는데, 시간이 부족한 나는 번번히 가지 못하다가 딱 한번 잠시 들려 얼굴만 보고 나왔다. 역시나 변함없는 좋은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며 연주를 했다. 얼마나 고마운가, 변함없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니. 그의 요청은 다시 그와 듀오로 연주를 시작하자는 거였는데 고맙지만 지금은 무리라고, 여름이 지나면 생각해보겠다고 답해주었다.

 그와는 정말 열정적으로, 밤새 LP를 들으며 스탠다드를 연주하고 편곡하고 고쳐보고 녹음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게 벌써 2년전이다. 별것 아닌 이유들로 잠시 헤어져 각자의 커리어를 펼치고 있지만 아직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살아가며 나를 생각해주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같이 음악을 들으며 클럽에서 연주를 하고 같이 집에 걸어오던 예전 밤들을 잊을 수 없는 것 처럼, 때로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는 집필하고 있는 책 편집, 석사 2학년 시험, 작곡 등으로 나날들을 채우기 바쁘기에 내 개인 연습과 작업에 조금은 소홀하고 있긴 하지만 얼른 마무리하고 다음에 쓰일 음악 이야기들을 기대하고 있다. 파리에서든, 한국에서든, 어디서든 가장 행복하게 음악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은 내 중심이 오로지 나와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게 머무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가장 쉽지만 어렵기도 한 우리네 운명. 사랑하고 다치고 상처받고 다시 마주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이 존재함에 감사함을 잊지않고 후회없이 마음을 다하는 상태가 지속되기를. 돈이 없어도, 외로워도 괜찮다. 그래도 내 주위를 돌볼 마음의 여유가 있으니. 일단은 3월을 어떻게 마무리 할지, 손에 있는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힐링하고 돌아올 수 있기를.